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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차단

즉각적으로 말하고 싶은 욕구와 자작곡

by 이가연 Jan 30. 2025

내가 차단한 사람 중 일부는, 차단 그 자체로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ADHD를 가진 사람은 감정이 즉각적이고 충동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차분하게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거나 반응을 자제하는 것이 가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설사, 급똥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말없이 차단만 한다는 건 급똥을 틀어막는 수준이다.


또한 ADHD는 감정적으로 매우 깊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 한 번 감정이 격해지면 그것이 매우 크게 느껴지고 그 감정을 계속해서 되새기거나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말없이 차단을 하고도, 차단 풀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해서 든다. 그러나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약을 먹어서다. 한 번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면 수도꼭지 튼 것 마냥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나중에 자책하기 때문이다.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 스스로를 위해서 베스트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안다. 그렇기에 만일 차단을 풀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상황에서 더 큰 충동을 보이면 나의 그날 하루에도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ADHD 검사에서 자제력 부분이 저하가 나왔다. 그러니 ADHD의 수많은 증상 중에서 유난히 충동성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충동적인 행동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즉시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해져 당장 즉각적인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평소 나를 알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과격하다. 그러니까 증상이고 병인 거다.


그런데 그 지금 당장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싱어송라이터로서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차단당했을 때, 울면서 일단 그냥 녹음기를 켜고 멜로디와 가사를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장소와 관계없이 그 '순간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욕구' 때문에 대부분의 자작곡들이 탄생했다. 지금 이 브런치 글도 탄생했다.


말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나한테 꺼지라고 하고 차단했으니까.

말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말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내 카톡에 단답만 하니까.


각종 이유로 상대에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곡이 탄생했으니, 이는 ADHD에 고마워할 일이다. 다시 태어나도 ADHD 없이 태어나고 싶지 않다. 차단이라는 그 씁쓸한 방법을 택해야 분노를 막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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