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이란 무엇일까요.
내 앞에 있는 누군가 '짝'하고 박수를 쳤다고 해봅시다.
박수라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차릴까요.
두 손바닥이 부딪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파동이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내 고막에 전달됩니다.
고막의 떨림은 신경세포를 통해 뇌에 전달되고
뇌세포는 뇌신경 네트워크에 발현된 전자기 패턴을 통해
이를 소리라는 형태로 인지합니다.
이와 동시에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봅시다.
'짝'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저 사람이 박수를 쳤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이해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무의식 중에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박수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그 박수 소리는 일어난 현상일까요.
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했고 나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니 일어나지 않은 일일까요.
마음 챙김 명상에서는 '알아차리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내 몸과 마음에서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 곧 명상의 시작입니다.
한 발 더 들어가 봅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16분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픕니다.
'배고프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알아차림이 아닙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림'입니다.
배고프다는 느낌에 이어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는 것은 '알아차림'이 아닙니다.
'배가 고프다는 현상이 내 몸에 일어났고
그로 인해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라는 것이
'알아차림'이고 수행입니다.
말장난같이 들릴 수도 있고,
그게 뭐 별거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일어납니다.
호흡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숨을 쉽니다.
숨을 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짜 알고 있나요?
그렇다면 내 호흡을 관찰해 봅시다.
들숨과 날숨, 이에 따른 가슴과 배의 움직임.
숨 쉬는 내 몸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자면, 아주 생소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숨을 쉴 때 코 끝에 느껴지는 감각,
공기가 폐로 흘러 들어와 부풀어지는 가슴,
불룩해지는 복부,
들숨과 날숨의 길이와 간격.
매일 만 번 이상 숨을 쉬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변화무쌍하게 쉼 없이 일어나는 느낌과 감정과 생각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
여기서 명상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