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거의 대부부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 한다. 개발도상국부터 선진국까지는 이제 절대적 빈곤은 없고 상대적 빈곤만 남아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sns나 언론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도 그랬다. 나도 부유한 삶을 보며 동경했다.
수능이 끝나면 고등학생들은 반에 모여서 마피아 게임을 하거나, 보드게임, 영화를 봤다. 문화 생활을 학교에서 권장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21”이라는 제목의 도박 영화를 봤는데, 미국에 명문대생들이 카지노를 습격해서 “블랙잭”이라는 게임 종목으로 돈을 벌어오는 내용이었다. 기억력을 극대화 하고, 확률을 이용해서 계산하고 돈을 따내는 이야기.
어느날 나는 코엑스 대학 박람회를 가게 되었다. 학교가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학과와 시설을 홍보하는 이벤트였다. 나는 거기서 카지노학과 부스에 들렀고 “룰렛”이라는 게임을 했다. 약간 직관적으로 게임을 진행했는데, 꽤 많은 칩을 불렸다. 그러다 한방에 날렸지만 진짜 돈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룰렛”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모든 카지노의 게임은 카지노 딜러가 확률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다. 게임에 배팅하는 리스크를 줄이면 줄일 수록 보상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최적의 리스크와 보상 배율을 맞춘 베팅법을 만들어냈고, 1년간 친구와 함께 모의로 게임을 진행했다. 긍정적인 확률로 승패를 반복했다. 우리는 “대수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데, 수학적인 확률이 현실에서 정확하게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학적인 확률이 현실에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 횟수를 가져갈때 현실의 확률이 수학적 확률에 수렴한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우리는 칩 하나 당 가격을 나는 만원, 친구는 5천원으로 바꿔서 게임을 진행했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배팅법을 진행하면서도 유연하게 다른 확률에도 배팅했다. 함께 간 친구는 아쉽게도 확률적으로 몇 번 잃더니 이성을 잃고 마구 배팅해서 금세 빈털털이가 되었다.
배팅의 90 퍼센트를 원칙에 준수해서 하며, 10 퍼센트는 그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배팅했다. 카지노가 운영되는 시간 전체를 룰렛에 배팅하며 보냈는데, 10만원으로 시작해서 6.8배 수익을 얻었다. 그날 그 친구와 서로 돈거래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그날 카지노 입구 맞은 편에 앉아 있을때, 입구 왼편에서 5만원 권을 양손 위에 쌓아들고는 빨개진 눈에 눈물을 머금고 카지노를 향해 뛰어가는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를 생각했다. 도대체 그 아저씨는 무슨 돈을 잃었던 걸까? 얼마를 복구해야하길래 저만한 돈을 들고 가는 건가? 혹시 딸의 수술비를 날렸나? 그런데 그 돈을 복구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고 다시 도박을 하려 뛰어들어가는 건가? 그래 그렇지 않으면 저런 표정은 말이 안돼. 나는 혼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친구를 봤다. 친구는 조금 멍한 표정이었다.
기분이 너무 나빴다. 왜 그랬을까. 원인을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돈과는 별개의 꿈이었다. 나는 문학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안에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다시 카지노를 향했다. 혼자가기 무서워서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는데, 자기는 이제 안할거라고 했다. 원칙대로 했는데, 다 잃지 않았냐며. 혼자 카지노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버려가면서 나는 나에게 벌을 줬다. 나는 마구잡이로 배팅했고, 수 분만에 20만원을 전부 날려먹었다. 나는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재미있는 만화를 찾아보는데, 도박 만화들에 흥미가 갔다. 그래도 내가 카지노도 가봤고, 이야기로 보자면 재미있는 소재기도 해서 도박마 거짓말 사냥꾼 바쿠, 카케구루이 등을 봤는데, 가장 재밌던건 거짓말 사냥꾼 바쿠였다.
거기서는 "판단"에 관련된 이런 대사가 오간다.
장면 1.
인생은 카드 게임과 같다. 손에 들어온 패는 '결정론'을 의미하며, 어떤 카드를 낼지는 자신의 판단에 따른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 자가 남보다 길고 충실한 인생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자는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며, 실의에 빠진 채 죽어가겠지. 자신의 판단력 부족은 원망하지도 않고, 기억력을 키우려는 자는 있어도 판단력을 키우려는 자는 없다. 하물며 '인생이라는 도박'은 판단력을 좀먹는 욕망의 쇠사슬. 끝없이 욕망에서 욕망으로 이러지는 나선. 인간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갈등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갈등을 참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다.
장면 2.
"읏. 젠장, 점점 어려워지네. 처음엔 참 쉬운데 말이야. 판이 거듭될 때마다 어려워져서 자꾸 죽는다니까."
"오 또 그 게임인가요? 돼지가 화살 쏘는거."
"인생도 마찬가지야. 같은 판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는 결코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항상 높은 곳에 도전하는 자에게 인생을 플레이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위기와 맞닥뜨리는 영원한 수라장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약속의 네버랜드 라는 만화를 봤는데, 거기서는 도박과 현실에 대한 차이점. "판단을 뛰어넘은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장면 1.
"크리스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어... 총알도 스치기만 한 것 같고 피도 이미 멎었다고 잭네는 말했지만. 엠마 네 탓이 아냐."
"하지만...! 내가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보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좀 더 제대로 경계하고 있었다면...!"
"내가 너한테 한 이야기 기억하냐? 그 판단은 올바른가? 그게 아냐.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내릴려고 하는 건 중요해 하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냐. 판단이 올바른가 잘못됐는가 같은 건 그때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중요한 건 판단한 뒤 결정한 판단을 올바르게 할 노력 설령 결정한 판단이 나쁜 결과를 초래해도 거기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발버둥칠지가 중요한 거야. 판단만으로 일이 이뤄진다면 인생은 도박이 되버리겠지. 자신의 판단을 믿어라 엠마 그리고 그걸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앞으로 전잰해 너라면, 너희라면 세계를 바꿀 수 있어."
장면 2.
"중요한 건 판단한 후야. 그 뒤로 무엇이 가능한지 얼마나 발버둥칠 수 있는지가 중요해. 지금 무엇이 가능하지? 해야할 일은 뭐지? 둘의 안부를 확인하러 가고 싶어. 하지만 레이가 말하내로 그건 불가능이야. 쉘터에는 돌아가지 못해. 기다릴 수 밖에 없어. 7개의 벽은... 지금은 때가 아냐.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어. 리스크 또한 존재해.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 도박과 현실은 공통점이 참 많고, 차이점이 딱 하나 있다. 그게 뭐냐면 도박은 매판이 독립 시행이라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한 가지 일을 계속할 경우 노하우라는 것이 쌓이게 된다. 물론 도박 중에서도 텍사스 홀덤 처럼 보유한 칩의 흐름이 게임의 시작과 끝까지 영향을 주는 게임도 있지만, 홀덤 조차도 게임의 승패에 대한 승률은 우리가 노하우로 바꿔낼 수 없다. 정해진 카드 내에서 플레이 해야한다. 반면에 인생은 정해진 룰이 없다. 하나 있다면 법이다.
텍사스 홀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로 인생과 유사하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SB와 BB, 딜러의 역할을 하게 되는 데, SB와 BB는 매판 배팅pot에 칩을 먼저 배팅해줘야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의식주, 교통비 등 생활비에 해당한다. 인생이라는 게임에 참여했다는 것을 나타내며 최소한의 돈을 배팅해줘야 한다. 그리고 만화 바쿠에서 나온 대사처럼 인생이 흘러간다. 그리고 만화 약속의 네버랜드에서 나온 대사처럼 인생은 숙련도가 쌓여 같은 게임에서도 승리할 확률이 올라간다. 나는 이런 이유로 도박을 그만 두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바로 인생에서 대수의 법칙으로 하나의 게임에 대한 숙련도를 쌓은 예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배가본드"라는 일본 전국 시대 사무라이 만화의 대사를 통해서 노력, 발버둥에 대해서 전달하고자 한다. 상황은 대기근, 포기하는 자와, 포기하지 않은 자에 대한 대화다.
장면 1.
농부 왈 "댁이라고 해서 든든히 배를 채운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난리법썩을 떠냔 말이요. 개간이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주제에 왜 그리 끈질긴거요. 그 힘. 그 몸. 그 눈. 이제 그만 좀 하쇼. 부탁이니까 제발 떠나달라고."
다케조 왈 "...? 뭔가 폐를 끼치기라도?"
이오리 왈 "강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버리는거야. 모두가 똑같다면 보이지 않았을텐데 다른 종류의 사람이 섞여 있어서 표면으로 떠올라버리는 겁니다. 자신의 비참함이 말이오. 그래서 그렇게 쫒아내려고들 하는 것이지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되면 비웃고 깔보고 선을 그어 자신들과 떼어놓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신을 외면하고 살게 된다."
결국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도박”보다 승률이 좋아질 수 있는 어떤 기술의 숙련도를 높히는 것이 중요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익률”의 평균이 높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버둥처라!
그래서 나는 내가 평생 해왔던 것, 그리고 동경했던 것,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것을 27살이 된 2023년 10월에 오랜 방황을 끝내고 결정할 수 있었다. 시대가 좋아져서 수익률이 높은 분야가 되었고, 앞으로도 전망이 밝다.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를 파야한다. 그런데 돈이 안되는 걸 파면 살아남기도 힘들 수 있다. 돈이 되는 걸 찾아내서, 안목을 길러서 시간이라는 초소중하고 초귀중한 자원을 쏟아부워라. 이 안목에 대해서는 사업카테고리에서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