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나설 수 있다는 건

25.08.26.

by 윤직

기꺼이 길을 나선다는 건 발끝이 빗물에 젖는 것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낯선 골목의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낯선 건물들이 제 그림자를 내어주어도 그것이 곧 풍경이 되고 특별함이 된다. 그렇게 걸어가는 동안에는 굳이 목적지를 묻지 않아도 좋고, 걸음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풍경은 늘 같은 자리에 있으나,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색을 품는다. 기꺼이 본다는 건 그 차이를 놓치지 않고 마음 안에 담아내는 일이며, 그저 스쳐가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도 오래 남을 여운을 발견하는 일이다.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은 공기에 실린 기척조차 놓치지 않는 태도와 닮아 있다.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 다가왔다 멀어지는 발자국, 저물녘의 빛이 천천히 기울어가는 장면 모두를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 순간은 특별한 장식이 없어도 이미 완성되어 있고, 굳이 더할 것이 없어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사랑했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모든 순간을 가득 끌어안아 놓는 행위에 가깝다. 지나친 간판 하나, 스쳐간 바람 줄기,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낭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기꺼움이 깃들면 풍경은 깊어지고, 걷는 길은 시가 되고, 순간은 하나의 계절처럼 우리를 감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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