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1.
반팔보다 긴팔에 먼저 손이 가는 날들이 찾아왔다. 해는 짧아지고 달빛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공기 속에는 적막이 스며든다. 봄과 여름의 잔향이 옅어지고, 겨울을 준비하는 이 계절의 중간쯤에 서면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지나왔는가, 무엇을 잃었는가,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 그렇게 마음 한켠에서 오래 굳어 있던 생각들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잊고 지냈던 것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사소한 것들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커튼 사이로 스미는 희미한 빛, 따뜻한 히터 바람과 어두워진 바깥 풍경 같은 것들. 예전엔 그런 것들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였는데, 요즘은 그것이 조금 희미해진 듯해 괜히 서럽다. 열정이란 언제나 타오르는 불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고 잦아드는 불씨였다. 불은 꺼진 게 아니라 다만 다른 모양으로 머물고 있을 뿐인데, 나는 그것이 사라졌다고 단정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계절은 그렇게 잊었던 것들을 다시 불러낸다. 손끝에 닿는 가을옷의 촉감처럼,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이 마음에 스민다.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느낄 때, 비로소 그 무게를 실감한다. 그리고 묵묵히 긴팔을 고르고, 길어진 밤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다시금, 지나온 계절과 마주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