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은 May 07. 2021

엄마의 맛

나의 애정하는 생활

"맛있네." 주말 저녁에 콩나물국과 오므라이스를 먹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국을 잘 끓여주셨다고 가끔 남편이 말하곤 하는데, 나는 국이 없어도 밥을 잘 먹는다. 국물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콩나물국을 가끔 끓이는데, 웬일로 맛있다고 한다. 딸아이는 가끔 내가 밥을 해주면 맛있게 먹으며 엄지 척을 해준다. 어떨 때는 엄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며 알 분을 떤다. 같은 음식인데도 남편보다 아이가 유독 엄마 음식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 엄마가 물김치를 했다. 한통 얻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씩 꺼내먹다가 다 떨어져서 엄마에게 물김치 아쉽다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이제 몸이 아파 못한다며 남은 김치는 못주겠다 하신다. 갑자기 엄마의 김치는 이제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엄마가 해준 많은 음식들이 떠올랐다. 간식으로 해주던 핫케이크와 김치부침개, 도시락 반찬에 미역줄기와 메추리알 조림, 집에서 밥반찬으로 자주 해주던 양미리까지... 엄마의 밥이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밥을 잘 먹는 아이였다. 흔한 반찬투정도 한번 없이 식욕이 반찬이었던 나는 모든 것이 맛있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맛없다는 건 정말 못 먹을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의 반응으로 보아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언젠가 이야기했었다. "너랑 밥 먹으면 반찬이 맛있어. " 나의 언니도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도시락 반찬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언젠가 한다. 엄마의 음식 중에 김치부침개는 오래된 우리 자매의 간식이었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 엄마는 김치부침개를 자주 부쳐주셨다. 일을 나가는 엄마가 부엌에 소복이 김치부침개를 올려놓고 나가면, 들락날락 집어먹던 김치부침개... 초등학교 때 살던 연희동은 부촌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집만 외딴섬처럼 가난했다.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진희 언니 역시 부자였다. 집에 가보면 신기한 물건이 많았고, 일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상하게 진희 언니는 우리 집을 부러워했다. 특히 우리 엄마의 김치부침개를 좋아했다. 자신의 집에 가서 일하는 할머니에게 해달라고 졸라 우리는 부침개를 먹어보았다. 좀 밍밍했다. 할머니가 김치를 너무 씻어 싱거웠다. 진희 언니는 이맛이 아니라며 울상이었다. 진희 언니에 비해 언니와 내가 엄마의 맛을 언제나 느끼고 살아왔음을 최근에야 깨닫는다. 언젠가 장모의 LA갈비를 특히 좋아하는 남편이 말한다. "박 여사, 장모님 LA갈비 좀 배워요."


이전 13화 카페 - 작은 공간의 여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