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답을 찾다
아들, 오늘은 이 책 한번 보고 잘까?
엄마는 이렇게 하는 것 싫은데…….
동생한테 이것 좀 해줄래?
엄마의 요구사항이 아무리 많아도 한 번도 말대꾸하지 않고 잘 따라주는 아들은 내게는 믿음직하고 든든하기만 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방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그리고 심지어는 문을 잠가버린다.
엄마인 내 심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심하게 쿵쾅거렸다.
내가 이 상황에서 엄마로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지?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잘못하면 아들하고 멀어질 텐데 어쩌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춘기란 말인가?
무섭고 두려웠다.
늘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은 나에게 쾅하고 문을 닫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반항을 시작했다.
아~ 자식 키우는 게 힘들다는 것이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로구나.
나는 그동안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그리 마음고생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중학생이 된 아들의 일탈된 행동은 나에겐 당황이었고 걱정이었고 두려움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지?
그렇다고 속 시원히 해법을 가르쳐줄까?
내 아들의 모습을 나쁘게 말하면 어쩌지?
혼자 고민하다 혼자서 찾아간 곳은 서점이었다.
제일 많은 육아서적과 교육서적을 만날 수 있는 제일 큰 서점을 찾았다. 교보문고…….
늘 시간을 쪼개가며 하루가 너무나 바빴던 나는 주로 인터넷서점을 이용했지만 그날만큼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작정 시간을 빼서 혼자서 교보문고를 향했다.
따끈한 신간도서는 보란 듯이 나란히 누워서 나를 반겨주었다.
이 책 저책 서서 목차를 보고 내용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좋은 육아와 교육에 관한 내용들이 있었지만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해법을 제시하는 책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저쪽 벽면으로는 빽빽하게 세워져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로로 줄지어 서있는 제목들을 읽어보며 한 권의 짧은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엄마 수업
심플한 제목이 쉽게 읽힐 것만 같아서 빽빽한 책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빼서 제목을 보고 지은이를 보니
법륜스님의 글이다.
스님들의 책은 영혼이 맑아서인지 참 쉽고 간결하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주신다.
부담 없이 책을 뽑아 읽어 내려가던 중 한 줄의 메시지에 눈이 갔다.
그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가슴에 와서 꽂혀 버렸다.
머리가 맑아졌다.
유레카를 외치듯 나는 깨달음을 얻은 심정으로 책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아들과의 냉전을 해결할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지금부터 아들의 모든 것들에서 조금만 관심을 숨기고 그리고 조금만 발을 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 중학생이 된 아들을 키우다 보니 엄마는 모든 것이 걱정이 되어서 말로써 이랬니? 저랬니? 체크했을 뿐인데 아들은 그런 엄마가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관심 숨기기를 며칠간 하다 보니 아들의 성격이 예전처럼 조금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다 싶어 아들을 데리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며칠 전에 네가 문을 쾅하고 닫고 들어갔을 때 엄마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
우리 아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걱정도 되었고 엄마가 어떻게 너의 마음을 풀어줘야 할지 방법도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웠어. 그리고 동생이 그 모습을 보고 배울까 봐 걱정도 되었었고. 앞으로 그렇게 문을 세게 닫고 들어가는 건 안 했으면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엄마도 조심할게. 너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하고 행동할게. 그리고 문을 잠그는 건 안 하면 안 될까? 그 대신 너 방에 들어갈 때는 엄마도 신경 써서 꼭 노크하고 들어갈게. 문은 잠그지 말도록 하자.”
아들은 조심스럽게 말하는 엄마 마음을 이해했는지 수긍을 하였고 그날의 쾅하고 문을 닫은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해왔다.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나도 조심을 하고 말도 행동도 서로 기분 다치지 않도록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게 되었지만 아들도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춘기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는 살얼음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잠시만 방심하면 좍 갈라지는 살얼음,
너무 걱정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니 아들도 나도 한결 서로에게 상처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상황 정리를 하게 만들어준 법륜스님의 한마디 말씀…….
아직도 그 간결한 메시지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말을 옮겨보면…….
어렸을 때는 원 없이 사랑해 주고
청소년기가 되면 지켜보는 사랑을 하고
20살 청년기가 되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 주어라.
그것이 자녀를 진정으로 바로 세우는 길이며 부모와 자식 간에 부딪치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문구를 우리 원의 부모님들께도 여러 번 인용을 하고 내가 읽은 책에 밑줄을 그어서 자녀교육에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선물로도 드렸다.
청소년기에는 지켜보는 사랑을 하라는 그 말씀.
나는 속으로는 끌고가는 사랑을, 간섭하는 사랑을 집요하게 하고 싶었지만 겉으로라도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지켜보려고 노력하였다. 아니 지켜보는 척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단순한 노력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그나마 금이 가지 않게 해 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만약 내가 이 문장을 읽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과 한바탕 언성을 높이고 가르치려고 들었다면 아들과 나. 모두에게 가슴 아픈 상처가 되고 전쟁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하신다.
낳고 키우고 그 정을 너무나 큰 사랑에 담아서 아이들을 키우고 양육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들은 너무나 팍팍하고 정신없는 삶들을 살아가시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바빠서 어쩌면 타인의 도움으로 육아를 해결하시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유아를 위한 교육기관에서 교육과 더불어 보육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부모님들의 사랑은 하늘에 닿을 만큼 모두 크시기만 한데 가끔은 그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못 찾아서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자녀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그리고 줄 수 없는 사랑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만 할 것이다.
어렸을 때의 사랑은 최소한 초등학교 6학년까지로 나는 생각한다.
유치부 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면 말썽쟁이 , 개구쟁이, 심술쟁이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어리기만 하고 아직도 성장한 그 모습 속에 아기 같은 순수함이 있어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즉, 아직도 받아야 할 사랑이 많은 나이이다.
요즘은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 고파서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참 많이 보인다.
그 모습이 어떨 때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경우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것에 대한 의욕상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YES맨이 아닌 모든 것에 NO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폭력을 쓰는 경우도 보인다.
여자 친구들은 나에게만 관심 가져주기를 간절히 열망하며 친구들과의 선생님 사랑 나눠가지기에 힘들어하는 경우들도 있다. 하나하나의 보이는 모습들은 다르지만 그 원인의 공통점에는 사랑 고픔이 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아이들의 어린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있다.
선생님이 아무리 사랑을 넘치게 주고 너만 예뻐, 너만 사랑해를 외쳐도 내 부모, 내 엄마에게서 받는 사랑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그 사랑이 고픈 나이가 어린 시절 초등시절까지라고 보면 된다.
바쁘지만 조금 여유 내어 내 아이를 사랑해보자.
더 많이 사랑을 주는 척해보자.
사랑이 가득 넘쳐 더 이상 사랑이 고프지 않을 때 아이들의 마음은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 반대로 어렸을 때는 열심히 사느라 바빠서 때 되면 다 할 거야라고 마음껏 내려놓다시피 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간섭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철이 안 들었니?
내가 너에게 못 해준 게 뭐가 있니?
이제는 스스로 좀 하면 안 되겠니?
하나에서 열까지 내 자녀의 행동이 맘에 안 들어 바로 잡겠다는 심정으로 잔소리하고 간섭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런 부모님의 뜻을 따라가기가 어렵고 싫다.
더 반대로 하고 싶어 진다. 청개구리 심리가 나타난다.
한집에 사는 것이 불편해지니 말수가 줄어들고 방문은 점점 굳게 닫혀버린다.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화의 시작이 어렵다.
거기다가 학원으로만 돌던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면 더욱 말이 하기 싫어진다.
우리 자녀들과 이런 모습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한발 물러나 지켜보는 사랑을 해야만 한다.
마음 가득 잔소리를 속으로 쓸어내리며 격려의 말, 칭찬의 말, 힘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기다려주기,
기다림이 쉽지는 않다.
성격 급한 나도 너무 조급해서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는 사리가 생길지라도 절대 스스로의 성격을 다 보여서는 안 된다.
좀 더 어른답게
좀 더 부모답게
그러다 보면 조금씩 기다리고 참는 것도 내공이 쌓이듯 익숙해져 가리라.
나는 아들이 대학생이 되던 해 독립을 시켰다.
집을 구해주고 스스로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기숙사 생활 3년에 또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아이의 사생활도 있으니 방을 얻어주었다.
내가 관리하던 아들의 용돈 통장도 조그마한 목돈을 만들어 전해주었다.
이제는 먹고 자고 시간 관리하고 경제 관리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일임을 해주었다.
조금 걱정은 했지만 그것이 아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나중을 위해서도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법륜스님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라고 해서 용기 얻어해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들은 시간 관리도 제법 잘하는 듯하다. 매 학기 장학금을 받는다.
용돈 관리도 잘해서 종잣돈을 쥐어줬더니 아끼고 아껴서 목돈 통장을 만들어놓았다.
살림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지 혼자서 수육도 만들어 먹을 정도다. 나보다 낫다.
인터넷 레시피가 일류는 아니지만 남자 친구들의 요리에 지대한 도움이 되어주어 너무 고맙다.
그렇게 자녀와 부딪치며 혼자 고민하고 끙끙대던 나는 단 몇 줄의 문장에서 내 아이들을 위한 방향을 찾았고 실천했고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내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각자의 길을 찾아 성실히 걸어가는 책임감 있는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이제는 엄마인 나만 제대로 잘 살아가면 된다.
눈물짓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즐겁게 잘 살아간다면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잘 사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 걱정 안 하게 하는 엄마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