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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ul 09. 2021

가장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는 ...


이전 발행한 글에     

-감정을 걷어내고

-누구나 공감하고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글로 “다시 쓰기” 했습니다.      

“라이킷” 해주신 “독자분”들게 급하게 ‘발행 취소 한 점’ 거듭 사과드리겠습니다.     




나의 ‘수치심’에 대해서 쓴 브런치의 글은 그야말로 내 ‘삶의 커밍아웃’이었다.     

깊은 수심 아래 꽁꽁 숨겨두고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해 둔 나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나는 놀랍게도 ‘치유’의 과정을 거쳤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나의 내면의 수치심에 공감해주며 응원하는 댓글들로 나는 힘을 얻었다. 즉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는 나만 “앓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혼자만 살아가지 않는 사회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모여 ‘가장 보편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

다른 이의 삶을 엿보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다른 이의 생각을 읽기 위해 ‘책’을 읽는다. 즉 다른 이의 삶과 나의 삶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즉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합쳐져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성추행’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누구나 당당하게 이야기하게 된다면 이것은 공적인 문제제기가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성적 결정권’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운동이 “미투”이다.  )   


나의 “가정 내폭력” 이야기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겪고 있지만, ‘그 가정 내의 이야기’, 즉 누군가의 잘못,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면 드러내 놓지 못하고 혼자만 앓아야 하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 준다면 이것은 더 이상 개인의 부끄러운 수치심이 아닐 수 있게 된다. 그로써 공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길이 열릴 것이다.     


나의 “장애인 아들”의 이야기 또한 내 가정 내에 “불행한 일”로 간주된다면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어려움일 뿐이다.

‘장애가족’ 이야기를 자주 접하고 많이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나는 그랬다”라고 시작되는 나의 글들로 내 사적 경험이 나와 같은 고통으로 힘들었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런 나의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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