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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콩트 (27)

따로따로

by 최병석

동중씨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강릉, 강릉에서 다시 광주까지 무박으로 달리고 또 달려도

거침없는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고도 남았다. 동중씨는 차를 몰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직업도 화물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힐링도 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전국의 자랑할만한 명승지까지 구경할 수 있는 건 덤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50줄을 바라본다. 나이를 먹으니 운전대를 잡는 것은 별것 아닌데 운전을 하고 나면 버겁다. 그만큼 힘이 든다. 이제 며칠이고 이어지는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니 이어지던 화물량도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왕성한 체력으로 전국을 누비던 행위가 뜸해졌다. 그런데 이에 더해 운전하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았던 밤샘운전을 마치고 급한 장거리화물 처리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을 칠 뻔하였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시내구간으로 접어들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멈칫하는 데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이다. 잠 속에서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눈을 떴는데 동중씨의 차머리가 남의 차 꽁무니에 바짝 붙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중씨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셈이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동중씨가 살아온 방식을 당장 바꾸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애마를 떠나보내기로 하였다. 하나씩 둘씩 그 애마에 얽혀있는 끈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오랜 기간 많은 끈들을 둘둘 말고 다녔던 셈이었구나, 바퀴가 둥글다고 그저 땅바닥을 훑고만 지나쳤던 건 아니었구나, 그러니 그 끈들을 끊어버리자니 아팠다. 그래서 중증 몸살에 힘겨워하기도 하였다. 이제 동중씨는 차를 이용한 직접적인 비즈니스는 접었다. 소량이지만 부가가치가 있는 상품을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택배시스템을 이용하여 판매하기로 하였다. 정 급하면 살아있는 KTX나 SRT 발송도 고려하고 가능하면 운전대를 잡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이제 운전이 무서웠다.

동중씨는 장거리운전을 안 하는 대신 지방출장을 위해 가능하면 고속열차를 애용 중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데다 쾌적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리예약을 위해 예전처럼 역으로 달려 나가 노심초사하며 표를 끊지 않아도 좋았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을 이용하면 수시로 들어가서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시간대에 표를 사고 기차시간에 맞춰 대기만 타면 만사오케이다.

오랫동안 거래해 오던 부산에 있는 장사장이 올만에 전화를 해왔다.


"어이 이사장! 요즘은 운전 안 하니 쫌 살만합니까?"


"아, 네 염려 덕에 많이 좋아졌어요 "


"이번에 새로 출시하는 제품에 동중씨가 취급하는 물건을

적용하고 싶은데 한번 만나볼 수 있습니까?"


기차를 탔다. 무조건 달려가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이런 기회가 아무 때나 있는 게 아니다.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상황과 형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만남은 꼭 가야 한다.


"어머나! 이건 꼭 가야 해"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화면에서 반짝거리는 호실과 창가 쪽 번호를 체크하며 비어있는 자리를 채웠다.

한참을 가는데 웬 여자분이 나타나더니 대뜸 자기 자리인데 왜 내가 앉았느냐고 따진다.


"저기 아저씨! 여긴 내 자리인데요"


"예? 그럴 리가 없는데요"


동중씨가 자신 있게 예약된 승차권을 보여줬다.


"아니 아저씨! 이 표는 오늘 표가 아니잖아요?"


아뿔싸!


이동중씨가 표를 잘못 끊었다. 빅오더를 예감한 나머지 동중씨가 들떠서 손따로 몸 따로 뇌가 따로 놀았다. 출발은 오늘이 맞는데 예약은 담주 오늘로 결제하였다. 이동 중인 열차 안에서 길을 잃었다. 동중씨는 부산까지 서서 가야 하는 걸까? 이를 으째쓰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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