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야의 콩트 (28)

어무이 구하기

by 최병석

장철 씨는 육식이 좋다. 최근의 추세대로 간다면 채식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맞는 일일 텐데 그는 여전히 고기, 고기가 좋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각종 나물과 채소위주의 식단은 그가 늘 피하고 싶은 메뉴들이다. 그의 이런 식습관은 순전히 할머니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썰이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할머니와 함께였다.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할머니께 위탁한 채 돈을 벌어야 했다. 셋방살이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고단함은 그나마 할머니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이어져 왔던 것이었다.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외손자는 금지옥엽이었다. 장철 씨 그가 원하면 가능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었다. 그중에서 특히

그의 편식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었다. 이제 장철 씨도 어른이 되었고 할머니도 안 계신지 오래되었건만 그에게 붙어있는 식습관은 쉽사리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데 그나마 할머니의 영향력으로 그가 먹는 유일한 메뉴가 있는데 그건 바로 김치였다. 김치중에도 김장김치 즉 포기김치는 누가 뭐래도 잘 먹는다. 잘 먹는 이유? 그건 바로 김장을 담그고 나서 속재료를 듬뿍 넣은 절인 배추에 싸 먹는 말캉한 고기 <수육>에 기인했다. 다른 채소는 몰라도 돼지목살이나 오겹살을 푹 삶아낸 <수육>과 곁들이는 김치는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애정하는 몇 안 되는 메뉴 중의 하나였다. 그런 메뉴이기에 해마다 <김장 담그기>는 장철 씨의 집안행사 중 빠지기 어려운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누가 뭐래도 매년 11월만 되면 온 식구-식구라고 해봐야 달랑 셋이지만-가 모여 김장을 담근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그의 어머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그 맛을 이어가며 특히나 장철 씨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수육> 잔치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도래했다. 장철 씨가 올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무이 우째 잘 지내시는겨?"

"올해도 어김없이 내 수육은 잘도 익어가는거지라?"

"야야...그런 말 하덜 마라"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신지라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신다. 허긴

김장은 큰 일이긴 하다. 예전 할머니 계실 때는 하도 먹을 것이 궁하고 긴 겨울을 나야 하기 때문에 보통 한 접에서 두 접은 예사였었다. 200 포기를 옮기고 자르고 씻고 절이고 양념버무리고... 완성되면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잘 넣은 뒤 볏집으로 감싸서 얼지 않게 해 줘야 되고...

그러나 이젠 세 식 구라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항아리가 아닌 김치냉장고의 덕을 보느라 그 양이 또 그렇게 적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또 부모님 사시는 곳이 아파트다. 단독주택이라면 김장하기가 조금은 수월하기도 하겠지만 아파트는 다르다. 김장을 주방에서 처리하기가 어렵다. 제한된 공간에서 물사용도 어럽다. 그래서일까? 장철 씨의 <수육 입맛>을 위한 작년의 김장 담그기는 결국 어머니의 몸살로 끝이 났었다.


"어무이 올해는 내 편하게 해 드릴게"

"뭔 말이고?"

"보니께 요즘 다들 절인 배추로 김장한다 안하요"

"내 큰맘 먹고 양념하고 절인 배추 주문해 놨응께"


내일이 김장하는 날이다. 오늘 최대한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가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 오늘만 지나면 그 막 버무린 양념 속을 듬뿍 넣고 절여진 배추쌈에 폭신한 돼지고기를 한입 가득 우걱우걱 먹을 수 있다. 신이 난 장철 씨!


"아들! 어무이 좀 살려주라"


갑자기 어머니한테서 긴급전화가 걸려왔다.


"왜 왜요? 어무이?"

"내 집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긋다 내 살려라"


장철 씨가 만사를 제쳐두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이고 이를 어쩐다냐? 흐미 ㅠㅠ"


문 앞에 당도한 장철 씨가 아연실색했다. 그랬다. 택배기사의 소행인지 몰라도 20킬로짜리 절인 배추박스 두 개와 6개짜리 생수 3팩이 떡하니 문 앞에서 힘을 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문을 열래야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장철에 장철 씨가 <어무이 구하기>를 위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중이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7화고야의 콩트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