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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7)

나무에 대하여/이성복

by 최병석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무슨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왼종일 마냥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몸통 과 가지와 잎새를 고스란히 제 뿌리 밑에 묻어 두고,

언 젠가 두고 하늘 아래 다시 서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 이다


<래여애반다라>저자 이성복 [출판 문학과지성사]


♡시를 들여다 보다가


무심코 지나칠 때면 나무들은 그저 초록빛 들러리일 뿐이다.나무들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이리도 많을 줄 몰랐다.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뜨거운 태양빛을 흠모하는 일방적 구애자의 전형적인 손짓과 몸짓이었다.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나무들이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할 수도 있겠구나,제 뿌리가엉켜 있는 곳을 들여다 보고 싶을 수도 있겠구나...

눈만 뜨면 보여지는 초록초록한 저들의 손짓발짓,몸짓에는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차분하게 포함되어 있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해 보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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