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루틴, 꽃과 음식과 내 손
끝날 듯 끝나지 않았던 추위와 겨울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모두들 기다리고 기대했던 봄이기에, 날씨가 따뜻해지자마자, 꽃이 봉오리를 내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향하는거겠지요. 이 모든 발걸음과 외출이 이리 따듯하고 같은 마음일 수 없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갈 때 햇살에 속을 것을 걱정해 옷을 괜히 두텁게 입지 않아도 됩니다. 반팔을 꺼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길고 끈질기고 우리를 지치게 했던 겨울이 가고, 기다리던 봄이 온 기념으로, 저만의 봄의 루틴을 보냈던 지난 평일과 주말을 남겨보아요
꽃시장은, 봄이 되면 유독 생각납니다. 꽃시장 문을 열었을 때 확 풍기는 생화냄새의 기억이 유독 봄에 더 짙어지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가야 마음에 드는 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유독 폭신한 이불에서 나와 꽃시장으로 향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꽃시장을 다녀오고, 컨디셔닝과 어렌징을 하는 것이 적어도 2시간은 걸리는 일이기에 평일에는 함부로 스케줄을 짜기가 부담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외부활동을 해야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꽃시장을 간다면 늘 토요일 이른아침에 갑니다. (일요일은 고터, 양재 꽃시장 모두 휴무에요)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이용했습니다. 서울 그리고 경기도에 사신다면 고속터미널과 양재 꽃시장을 많이 이용하실 거에요. 각각의 특징과 차이점이 있는데요, 늦은 밤(12시)~새벽이 가장 활발한 시장은 고터, 이른아침(6시~)가 활발한 시장은 양재에요.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이용하는 시장을 선택하실 수 있죠. 또 고속터미널에는 수입꽃이 많고 그래서 가격대도 살짝 높으며, 각 가게마다 취급하는 꽃이 각기 달라 꽃의 종류가 양재보다 더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 가게 주인분들의 친절도는 고속터미널이 더 친절한 것 같아요. 새 꽃은 매주 월/수/금 새벽에 들어와서, 이 때 가시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꽃집 사장님들을 보실 수 있어요. 동대문 저리가라.. 저는 꽃집 사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떨이와 함께) 가격이 저렴하고 덜 붐비는 토요일새벽(혹은 오전)을 선호한답니다. 이러한 여러 특징들 중에 화훼 사업자가 아닌 개인으로서 집의 분위기 환기와 기분전환을 위한 꽃의 소비 기준은 시장이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입니다.
기분전환 겸 집에 생기를 불어주기 위해서는, 많이도 필요없고, 두 단이면 충분해요. 예전에, 한창 꽃에 꽂혔을 때는 들기도 힘들만큼 5-6 단씩 종류별로 사서 거대한 핸드타이드나 센터피스를 만들곤 했어요. 그 때는 그런 작업이 참 좋았고, 지금은 이렇게 간단히 만드는 작업이 좋네요-
생각난김에... 예전에 만든 작업들을 좀 소환해봤습니다 껄껄 저.. 꽃 정말 좋아하네요.. 왜, 어떤 사람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파악하려면 그 사람이 돈과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보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완전 꽃인 사람... 근데 꽃에 한정짓지 않아보면요, 저는 손으로 만지며 만드는 것들에 가치를 두고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꽃, 베이킹, 요리, 글쓰기. 추상적인 생각이나 머릿속에 머무르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만져가며 만드는 것들이 내 삶을 더 밀도있고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
생각해보니 꽃값도 정말 많이 올랐어요. 물론 꽃도 시즌이 있기 때문에 가정의 달인 5월은 금값인데, 시즌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기본 꽃값의 수준이 3-4 년전보다 많이 올랐습니다. 그 때는 꽃시장 가면 5000원대 꽃이 대다수, 떨이는 3000 원도 있었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기본이 7-8000 원이네요.
꽃을 사왔으니, 컨디셔닝을 해줘야해요. 시간여유가 있는 토요일 아침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컨디셔닝을 합니다. ( 저는 이 날 아흐므 플레이리스트 when you have a cup of morning coffee를 들었고, 마음에 드는 곡도 찾아 플리에 추가했어요- 다들 아흐므 플리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듣고 계시죠?)
잡념 없이 음악 흥얼거리며, 손에 찔리지 않게 가시나, 물을 상하게 하는 잎을 제거하는 컨디셔닝은 그렇게 행복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꽃집 사장님들은 싫어하시겠죠? ㅎㅎ)
줄기가 부드러운 다른 꽃들은 절삭가위도 필요없이 손으로 위에서부터 후루룩 훑어주면 잎이 깔끔하게 정리되는데, 장미는 가시가 있고 줄기가 단단하기 때문에 가위로 제거해줘야해요. 절삭가위가 부모님 댁에 있어서 되는대로 안쓰는 가위로 했더니 손이 아프더라고요 ㅎㅎ 꽃시장 가시면 한 쪽에 화병/소재/패키지재료 파는 곳에 가위도 있으니 저렴한 값에 국산가위 데려오셔도 좋아요.
두 단을 섞어 어렌징 할까 했으나, 이번에는 각각 한 컬러씩 보여주는게 예쁘더라고요. 연핑크의 미니 장미와 커다란 얼굴을 가진 샛노랑 장미입니다. 주방과 거실의 분위기가 단 두 단의 꽃만으로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요-
어렌징을 마치고, 손님 대접 요리를 사부작 준비해봅니다. 이 날은 (처음으로) 코스처럼 준비해봤어요. 메뉴판도 만들어봤답니다 흐흐- 이런거에 꽤 진심인 저에요. 왜냐면, 너무 재밌으니까요?
손님이 돌아가고, 벌써 저녁 5시가 된 토요일. 남편과 예전에 (결혼 전 남편이 자취하던 동네의) 자주가던 공원으로 벚꽃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석양과 벚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우리의 최애 치킨도 먹고요
노란 장미를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겨 왔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마주하는 사랑스러운 순간-
사실, 토요일까지만해도 춥다고 느꼈는데 일요일은 정말 봄날씨더군요. 괜히 두텁게 나온게 민망해질 정도로 (얇은 니트에 니트 아우터 입었거든요) 따뜻했던 날씨. 이제 겨울은 정말 안녕인거지?
평일의 어떤 하루에는, 내가 늘 접하는 핸드폰, 카톡, 책,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가 너무 버거워서 이런 것들을 모두 차단한 채, 나의 생각과 감각에만 집중해서 인풋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습니다. 많은 매체로부터 소화조차 되지 않는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체할 것 같더라고요.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지고.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이나 절 같은데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저의 언어로 정리합니다. 첫 번째 읽을 떄는 후루룩, 두 번째 읽을 때는 221페이지의 작가의 말을 저의 말로 노트 한페이지에 정리해요. 이래야 완전한 저의 것이 되는 것 같거든요. 편집이나 기획하시는 분,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시는 분은 최혜진 에디터님의 '에디토리얼 씽킹'을 매우 추천합니다. 매거진에만 있을 것 같던 에디터라는 일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삶에, 모든 순간에 녹아있는 것이었더라고요.
흩날리는 바람에 연약한 벚꽃잎들은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직 많은 벚꽃들이 나무에 붙어있지만 말이에요. 이런 때는 앞으로의 날들에 비가 언제오지? 가 매우 중요해져 매일 날씨를 체크합니다. 그 비가 지나가고 나면, 나무에 피어있는 벚꽃을 바닥에서 보게 될 수 있으니까요. (바닥에 있는 꽃잎도 예쁘지만,,)
이렇게 적어보니 봄의 초입에 저는 꽃과 함께네요. 꽃은 사계절 내내 예쁘고 사랑받지만, 회색 겨울에서 다채로운 봄의 초입에 들어가는 순간에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도 같네요. 우리를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봄의 등장을 알리는 존재니까요. 꽃시장에 가서 일부러 꽃을 보기도, 사오기도 하고 벚꽃이 많이 피는 장소에 벚꽃구경을 명목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건 예상하지 못한 집 근처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새로움인 듯 싶습니다.
모두 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봄날을 여러분의 취향대로 마음껏 즐기는 날들 되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