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박기복 <수상한 기숙사의 치킨게임, 2018>

by Skyblue

1. 규칙, 도대체 넌 누구냐.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교칙이 살벌하기로 유명한 곳이었어. 면학 분위기는 잘 잡혀있어서 좋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교칙을 참아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머리는 귀밑 3센티미터까지, 가방은 무조건 검은색, 운동화는 무조건 흰색, 스타킹도 흰색(심지어 불투명), 교복 안에 쓸 데 없는 옷을 덧입으면 안 되고, 교복 겉에 입는 코트도 남색과 검은색만 가능했어. 뿐만 아니라, 불시로 하는 가방 소지품 검사에 손톱 길이까지 검사해서 체벌하기도 했으니까. 우리 학교 아이들이 길거리를 지나가기만 해도 눈에 띄는 촌스러움이 넘쳐흘러 주변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곤 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어찌 참았나 싶어. 6년이라는 시간을 말이야.


선생님은 다른 것에 정신 팔릴 것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촌스럽게 다닌다고 해서 공부에만 전념하는 게 아니잖아. 오히려 어쩜 이렇게까지 촌스러울 수 있는지 자학하며 더 집착하게 돼지. 얼토당토않은 이런 규칙들은 결코 우리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어. 우리를 긴장시키고 초조하게 해서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사무칠 정도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주제에 누구보다도 학교 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학교 생활을 했어.


겁쟁이었어.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어기는 순간 발생하게 될 일이 마냥 무섭고 두려웠어.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 번쯤은 일탈을 해 볼 것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어. 일탈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수백 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지. 그때 제대로 일탈을 해 봤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2. <수상한 기숙사의 치킨게임>



(p.28) 나에게 모든 치킨은 맛있다. 어떻게 맛없는 치킨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튀기는 방법이 어떠하든, 양이 어떠하든, 한 조각의 크기가 어떠하든, 모든 치킨은 맛있다. 그게 진리다.


방과 후 조별 발표 회의를 마무리하던 중 인욱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결국 딴 곳으로 새고 말았어. 다음 끼니는 내일 눈 떠야 먹는 아침인데, 방금 전 먹은 저녁 급식이 분노할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야. 배 터지게 먹고도 뒤돌아서면 다시 허기지는 게 일상인 고등학생에게 마음껏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보통 일이 아닐 거야. 한없이 망가져버린 급식 이야기로 투덜거리다가 누군가 치킨이 먹고 싶다는 말을 꺼냈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자기만의 치킨 철학을 읊어댔지. 양념이 좋다 후라이드가 좋다, 순살이 좋다, 어느 브랜드 치킨이 좋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인욱이는 기가 찼어. 세상에 맛없는 치킨이란 존재할 수 없고, 치킨 그 자체가 진리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아이였거든.


인욱이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저녁 급식을 먹고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면 생활관으로 가야 해. 민수, 병수, 준영이는 인욱이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였지. 급식을 허투루 먹은 것은 인욱이만이 아니었어. 방 친구들도 맛없는 급식을 참고 먹어줄 만큼 입맛이 호락호락한 아이들은 아니었거든. 생활관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옹기종기 보여 고픈 배를 달래는 겸 '치킨'을 주제로 한껏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지. 문제는 이야기로 끝맺지 못하고 실천으로 옮겨보겠다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거야.


인욱이와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에는 B사감이라고 불리는 방기훈 사감이 있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꽉 막힌 사람이라 아이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했어. 기숙사에서는 과자, 라면은 물론이고 방 안에서 취식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어. 하지만 묘하게 그 날 만큼은 기어코 진리 되시는 '치킨'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지. 인욱이와 친구들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루트 및 예상 소요 시간을 계산하여 새벽 1시 11분 기숙사를 탈출했어.


3. 먹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가 벌이는 치킨게임



이 책은 치킨을 둘러싸고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어. 치킨을 먹으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법지와도 같은 밤의 거리를 헤맨 아이들과 완벽한 증거인멸과 알리바이 속임수에도 단서를 찾아내 수사망을 좁혀오기 시작한 기숙사 사감의 대결이 아슬아슬해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어.


치킨을 두고 싸워서 치킨게임이긴 하다만, 치킨게임이라는 말은 목숨을 걸고 누가 겁쟁이인지를 가려내는 살벌한 내기를 두고 하는 말이래. 방식은 각자가 자동차 운전대를 붙잡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것, 아무도 양보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둘 다 크게 다치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가 겁을 먹고 운전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밖에 없어. 그러면 내기에서 지는 거지. '치킨'이 되는 거야. '겁쟁이'라는 말로 영어 단어를 검색해보면 'chicken'이 나오는 것도 다 여기서 유래한 거야.



과연 이야기 속 치킨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기숙사 규칙을 어긴 친구들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저녁 급식을 좀 맛있고 푸짐하게 주었으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해. 한편, 사감과 선생님도 아이들이 입맛에 조금만 안 맞아도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일이 잦아지니 그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칙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어. 아마 기숙사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 허락되었다면 아이들이 급식을 대충 먹고, 기숙사에서 먹는 일이 잦아지니 아이들의 식습관에도 문제가 생길 테니까.


4. 치킨게임을 끝내려면


https://news.joins.com/article/17599428


학생들은 규칙의 의미를 모르지 않아. 그리고 선생님도 아이들의 배고프고 지쳐있는 처지를 잘 알고 있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왜 규칙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갈등할까? 인간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하라고 하면 왠지 하기가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간절하게 하고 싶어 지는 일명 '청개구리 심보'. 규칙이 있는 곳에 일탈이 함께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지.


학교 규칙이 가지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어. '규칙'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될 만한 것을 위해 함께 지키고자 만든 '약속'이지만,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잖아. 학교 규칙의 경우 학생을 향한 고려 없이 교장 혹은 교감의 재량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학생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규칙이 아이들을 자율성을 해치는 일도 적지 않아.


'치킨게임'에서 서로에게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 학생이 참고 규칙을 따르든지, 선생님이 융통성 있게 샛길을 터주든지 해야겠지. 하지만 학교의 중심은 학생이라고 생각해. 학생에게도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함께 고민하고 정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치킨게임까지 번지는 일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른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에 너무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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