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 <편순이 알바 보고서, 2019>
1. 첫 알바의 기억
학창 시절 돈에 궁했으면서도 알바로 돈을 벌어보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어. 공부를 우선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첫 알바의 시작은 수능 시험 이후로 미뤄졌지. 무대는 대형마트, 지금은 철수해서 사라져 버렸지만 '까@푸'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명절 때만 되면 손님이 많으니까 3일 혹은 5일 이렇게 단기로 아르바이트를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 여기서 처음으로 돈을 버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어.
뭐든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다 보니 칭찬도 듣고, 돈도 벌고, 내가 이런 일도 할 줄 아는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지. 무엇보다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며 눈치 보지 않을 수 있고, 먹고 싶었던 것을 맘껏 먹고, 사고 싶었던 것을 고민 없이 지를 수 있던 것이 좋았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뿌듯함, '돈'을 벌면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거지.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지 어리고 힘없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말도 안 되는 일로 잘리는 일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친구가 어른들에게 이상한 연락을 받는 것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도 있었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내던져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무기력해지기도 했어. 알바를 시작한 게 고딩이 아니라 성인때부터였는데도 말이지.
2. <편순이 알바 보고서>
고등학교 2학년 정연이는 하고 싶은 미술 공부를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했어. 미대로 진학하는 것을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부모님께 미술 재료비니 학원비니 손을 내밀 수 있는 처지가 안 되었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알바라면 여기저기 기웃거렸지. 그러다가 편의점 알바를 하던 친구로부터 대타 알바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학교 근처 '알파와 오메가'라는 편의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야. 편의점 알바는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쉬워 보이지만,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박터지게 넘쳐나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 정연이는 놓치고 싶지 않았어. 친구의 도움으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편순이'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거야.
편의점 일은 생각보다 그리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어. 하지만 무엇보다 성가시고 불편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거지. 바로 사장님의 '임금 체불' 문제였어.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임금이 밀리고 있는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겪어 와서 이미 체념한 상태였어. 떼 먹지는 않는다는 희망 고문과도 같은 믿음으로 버티며 월급이라는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해졌을 때 찔끔찔끔 흘려주는 것에 만족하며 1년, 2년을 일해온 거야. 물론, 티가 나지 않게 밀린 월급에 대처하는 아이도 있었어.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편의점의 물건에 몰래 손을 대서 되팔아서 돈을 버는 거지.
정연이는 참고 또 참아보려 했지만,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치닫고 말아. 엄마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 달 생활비는 엄마 수술비로 고스란히 나갈 수밖에 없고, 동생과 자신이 어떻게든 한 달을 버텨야 하는데 편의점에서 일한 두 달치 임금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인 거야. 얼굴을 붉혀가며 한바탕을 하고 나서도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편의점 사장님의 모습에 치를 떨며 노동부에 임금체불 건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어. 하지만 노동부에서 해주는 것이라고는 고작 한 달 안에 체불된 임금을 납부하겠다는 '약속 어음'이라는 종잇장을 주는 것에 불과했고, 설사 주지 않는다고 해도 정연이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168쪽) 정연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상상해 본다. 편의점이라는 커다란 냉장고를. 그곳에 있는 물건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그 물건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적어도 사장에겐 그러했던 것 같다.
3. 분노케 하는 지점들
하나. 사장님의 논리
(145쪽) "임대료와 인건비를 제하면 한 달에 저한테 200만 원 정도 떨어집니다. 그나마 대출까지 갚으려면 가장으로서 생활할 수가 없는 돈이죠.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최저임금을 지키거나 월급을 꼬박꼬박 주어야 하는 거야 누가 모르나요? 그런 걸 다 지키다 보면 우리가 죽을 판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해. 직장을 다니다가 40대 후반, 50대 초반 즈음되면 더 회사에서 버틸 수 없으니까 퇴직금 받고 나와서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는 거지. 자영업이라고 해봤자, 늦은 나에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가게를 차리는 것까지는 어렵다 보니 쉽게 시작하게 되는 것이 프랜차이즈 자영업이야. 치킨집이나 편의점, 베이커리 같은 게 대표적이지. 대출도 끼고 매달 내야만 하는 가맹비다 뭐다 나가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는 하더라. 게다가 매년 최저임금은 오르고 또 올라서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조차도 부담이 된대.
하지만, 그런 이유로 어린 친구들의 아르바이트비를 체불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야. 만약에 임대료든 인건비든 가맹비든 내야 할 돈이 많고 갚아야 할 돈이 많아서 아르바이트비 조차도 줄 수 없는 처지라면 가게를 접어야 하는 게 맞지. 인건비가 부담이라면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몸으로 뛰던가 해야 하지 않겠어? 이야기 속 편의점 사장의 말은 닥친 상황을 적당히 넘어가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둘. 노동청의 논리
(148쪽) "정연 학생,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더 강력한 걸 원한다면 법적인 절차를 밟고 형사고발을 해야 해. 그건 여러 가지 비용도 따로 들고 지금 학업이나 일상생활을 다 젖혀두고 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겠다고 하는 데 더 뭐라 할 순 없어. 기다려 봐야지."
노동청 감독관이 편의점 사장과 정연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고작 5분 남짓. 왜 그러셨어요, 그래도 주셨어야죠. 한 달 안으로 주셔야 하는 것 약속하시는 거죠? 여기다 서명. 이게 끝이다. 설사 한 달 안에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정연이 사장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말로 타일러서 줄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곳까지 올 일도 없었다는 걸 모르나 싶다.
이런 상황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하지. 노동청은 분명 '국가'는 미성년 노동자의 임금 체불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습니다 하겠지만, 이것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야. 이 일로 사장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더욱 얕보게 될 것이고, 정연이는 자신의 용기 있는 행동이 힘없이 짓밟힐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
셋. 너희들의 논리
(97쪽) 그 아줌마 원래 쌀쌀맞아. 하지만 떼먹진 않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편의점 알바하려고 이태백들 줄 서 있는 거 너도 알잖아. 학교랑 가깝고 근무 시간도 그럭저럭 너랑 맞는 거 같은데 그 정돈 참아야지.
정연이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임금 체불을 두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 심지어 또 다른 친구는 월급으로 안 주니까 편의점 물건에 손을 대기까지 했으니, 결국 이 친구는 임금 체불을 당했음에도 가해자 신분으로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어. 사장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일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너희들의 소극적이고 서툰 대응 또한 한몫했을 거 같아. 너희들의 마음은 모르겠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동은 결국 제2의 제3의 피해자를 늘리는 것밖에 되지 않아.
정연이처럼 정말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한 사항이 아니라면 불합리를 감수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부모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한두 푼이라도 아쉬울 수 있는 너희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세상에는 약하고 어린 친구들을 속여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나쁜 어른들이 너무도 많아. 그래서 너희들이 그 속에서 상처 받고 무너지게 될까 봐, 그게 두려울 뿐이야.
4. 청소년이 행복하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솔직히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변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십대 친구들의 아르바이트는 평범하지 않은 소수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어. 그런데 2020년 통계청 자료를 보니까 중학생 100명 중 3명, 고등학생 100명 중 14명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 100명 중에 17명, 넓게 잡아서 20%, 그러니까 5명 중에 1명 꼴,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십대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는 거야.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유형의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나 조사된 자료가 없어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가장 빈번한 경우가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최저 시급을 다 쳐서 주지 않는 것 (2021년 기준 최저 시급 8720원) 혹은 소설 속에서 등장한 사례처럼 임금 체불이지 않을까 싶어.
십대 시기에 아르바이트하는 것은 선진국 어느 나라를 가도 굉장히 보편적인 일이야. 사실 고등학교만 가도 웬만한 성인들보다 빠릿빠릿하게 일도 잘하고 체력도 좋고 하잖아. 학생들도 책만 파고 있기보다 돈을 벌면서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거든. 물론 돈도 벌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도 하고.
남은 것은 결국 어른들이 해결할 문제구나. 십대 시기에 이렇게 노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면 학교에서도 임금 협상 및 체불 불이행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할 거야. 뿐만 아니라, 학교 혹은 그 외의 기관에서 이런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하며 임금 체불 건으로 자주 고발되는 점주의 경우에는 점포를 열지 못하게 한다든지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을 만들어야 해. 그리고 십대 너희들이 할 만한 건전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많이 만들어두는 것도 필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