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의 화장실

아오야마 & 오모테산도 - 2019.0411.1700

by 이규빈

여기까지 왔으니 바로 앞에 있는 프라다 스토어를 안 보고 갈 수가 없었다. 사실은 지난번에도 여길 왔었지만 안에 들어가 보질 못하고 앞에 앉아만 있다가 돌아갔다. 글쎄,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제 막 대학생 티를 벗은 신입사원 시절, 어딘가 후줄군해보이는 스스로 모습이 저 안의 공간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다. 물론 다시 찾아온 지금은 더 이상 그럴 필요 없다. 딱히 그때보다 더 귀티가 난다거나 구매력이 있어 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저길 들어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미우미우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프라다 스토어


6년 전의 나는 왜 저 문을 들어가지 못했을까...


난 절대 화장실을 쓰려고 이 건물에 들어온 게 아니다... 자연스러웠어


창밖으로 '용기 없는 신입사원이 앉아 망설이던 벤치'가 보인다.


마침내 목적 달성, 참고로 지하 1층에 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자연스럽게 쇼핑을 하는 척(그러나 나 빼곤 모두 내가 답사 왔다는 걸 알아챘겠지만) 화장실을 빠르게 스캔했다. 하지만 모든 층을 다 돌아봐도 당최 찾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물어봤다. 알고 보니 화장실은 지하 1층에만 있었다.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고, 용기 없던 지난날의 미련도 풀었으니 속이 후련했다.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


건물 전체가 유리와 금속으로 되어있다. 사진에 보이는 중앙계단의 바닥 또한 유리다.


다시 대로를 건너와 오모테산도로 넘어왔다. 이 곳 역시 아오야마와 비슷하게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즐비한 번화가다. 지난번 답사 때 꽤 많은 건물들을 들렀었지만 그 사이 애플스토어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이곳은 서울로 치면 청담동 명품거리와 비슷한 곳임에도 확연한 분위기 차이가 난다. 아무래도 보행자 중심 거리이기 때문 같았다. 글을 쓰기 얼마 전 혼자서 청담동을 걸어봤었는데 거리에는 보행자가 눈길을 둘 만한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억 소리 나는 고급 차들이 빠른 속도로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위협마저 느낄 정도였다. 같은 명품샵임에도 청담동보다는 오모테산도의 그것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기보다는 어떤 대상을 가정하여 설계했는가의 차이 같았다.


유리와 철을 이용한 다양한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으나, 의외로 투박하다.


중앙계단의 곡면 유리 난간끼리 만나는 부분


전면부 유리 멀리언은 별이 다섯 개, 아니 유리가 다섯 겹!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은 유리 디테일이나 전 세계 애플스토어 대부분이 이와 같이 금속과 유리를 이용한 투명한 공간감을 내세우고 있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다만 실제 구현된 것을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구석구석 열심히 살펴보긴 했다. 구조마저 유리로 해결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여러 장을 겹쳐 쓰고 있었는데 특히나 전면의 유리 멀리언은 무려 다섯 장을 겹쳐 놓은 형상이었다. 그럼에도 투명도가 생각보다 꽤 좋은 편이라 느낌은 잘 구현되긴 했으나 좀 투박해 보이긴 했다. 아무래도 유리는 깨질 듯 말 듯 한 그 위태로운 여리함에서 극도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일까?


플로어 힌지를 보다가 문득, 이 건축을 위해 땀깨나 흘렸을 모든 사람들의 노고가 떠올랐다.


질릴 정도로 유리, 유리, 유리뿐인 건물 전체에서 의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주출입구 유리문을 잡고 있는 플로어힌지다. 보통 많이 쓰는 방법대로 하면 힌지를 고정하기 위한 철판이 바닥에 큼지막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힌지를 고정하는 판 자체도 작을뿐더러 동일한 두께로 금속 문턱을 연장하여 덧대 힌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으나 저걸 구현하기까지 설계자나 감리자, 시공자 모두 꽤 고생했을게 분명하다. 하루에 이 문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 중에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설사 한 명도 없다 해도 나 하나만큼은 그 노고를 꼭 알아주고 싶어 사진으로 남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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