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어려워

시부야 - 2019.0411.1500

by 이규빈

외로운 출장지에서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내리 동창인 친구와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꽤 오래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도쿄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부터 출발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었지만 미술관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하던 차였다. 다행히 실력 좋은 설치 엔지니어들을 만난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예정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도리어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생겨버린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개찰구도, 플랫폼도 참 작았던 기타시나가와역 전경


고민 끝에 1일권 표를 끊고 시나가와로 가는 상행 전철을 탔다.


하라미술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기타시나가와에서 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 다시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시부야 역이었다. 가는 길이 너무 간단해 별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도쿄 지하철 환승의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간의 일본 여행에서 도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지하철을 탈 일이 없거나, 혹은 지하철 시스템이 사뭇 단순했었다. 지난 2013년의 도쿄 출장에서는 그저 소장님이 표 사주면 사주는 대로 쫄래쫄래 따라다니기만 했기에 지하철 타는 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도쿄 지하철을 '혼자서' 탑승해본 것이다!


기타시나가와 역 매표기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목적지에 Sibuya를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물론 이유를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JR 야마노테선의 역명을 게이큐 본선 매표기에서 찾으니 암만 다시 해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살짝 잔꾀를 부려보기로 했다.


'1일권 같은걸 사면 별 문제없지 않을까?'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역쯤 된다는 시나가와역 대합실 전경, 과연 교통의 요지 다운 규모다.


자, 이제 화살표를 따라 JR 야마노테선으로 환승만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난 그때까지도 저 사람들이 왜 표를 다시 사고 있는지 몰랐다.


야심차게 게이큐 1일권을 끊고 개찰한 나는 한 정거장 만에 시나가와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는 개찰구에서 당연스럽게 내 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만 몰랐던 것 같지만 도쿄의 지하철은 운영하는 회사가 여럿이고 서로 다른 회사끼리는 환승이나 표 호환이 안된다. 쉽게 말해서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에서 코레일 운영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코레일 표를 별도로 다시 사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나는 단 한 정거장을 무려 5,000원이라는 1일권 가격을 주고 탄 착한(?) 손님이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부야 역


확실히 번화가답게 내가 묵던 호텔 앞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 유명한 시부야의 X자 횡단보도는 어디 있는 거지?


시부야 역에 내리자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번화한 풍경에 금세 정신을 뺏겨버렸다. 이미 수중에서 나간 표값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다. 먼저 시부야로 온 까닭은 지난 출장에서 못 와봤기 때문이었고, 도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 X자 모양의 횡단보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헌데 분명 옆 앞에 있는 큰 사거리 같은데 사진으로 보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신주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횡단보도는 역 바로 앞이 아니라 도겐자카 거리 쪽으로 한 블록 더 가야 있었다. 다행히 셋째 날 밤에 다시 한번 들러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무렵이 오후 네 시 정도였으니 약속시간인 여섯 시까지 한 두어 시간 정도를 걸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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