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가 생기다

숙제하듯 살다가

by 다시 봄

“나중에 수업 마치고 집에 같이 가요. 지나가는 방향이니까 태워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강사님!”


독서심리 상담 수업을 들은 지 몇 개월 지났을 무렵, 집 방향이 같은 걸 알게 되신 강사님은 수업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제안하셨다. 그러니 수업을 마친 후에 당연히 내가 강사님 곁으로 오기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강사님이 갈 채비가 다 되신 줄 뻔히 알면서도 책상 정리를 하고 수강생들 명패를 치우고 다과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강사님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결국 강사님은 내 옆으로 오셨다.


“이제 갑시다!”

“아. 네”


그때는 시간을 끈 그 행동이 이상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늘 수강생들과 뒷정리를 같이 했었으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난 그때 왜 그랬지? 강사님과 같이 가는 게 싫었나? 다들 친해지려고 하고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데, 나는 왜 선뜻 다가가지 못했을까. 아니 피하려 했을까......


다른 사람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그게 나라는 인간이었다.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하면서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 행동을 내가 인식하게 된 것이다. 강사님은 처음 내게 제안을 했고, 두 번째는 시선을 보내셨고 마지막에는 다가와서 다시 한번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세 번의 권유에야 비로소 행동을 취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호의가 나한테는 있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부정 때문이었다.


그 못난 마음으로 살아왔던 나를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공격과 분노와 불안이 되었고 관계에서는 차가움과 단호함이 되었다.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고 있는 허술하고 가여운 나를 그때 만났다. 어쩌면 삶의 곳곳에서 이미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있었겠지만 공격 모드만 켜고 있던 때에는 내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냥 같이 가자고 한 것일 뿐인데, 복잡한 내 마음은 그 신호를 해석하느라 그렇게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썼던 글들이 다 남아있지는 않다. 모든 책이 다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도 아니었다. 반 정도만 읽고 대충 써냈던 적도 있었고, 다 읽지 못해서 한두 번은 불참하기도 했다. 수강생들도 첫 시간보다 조금씩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열두 명 정도가 남게 되었다.


그즈음 직장에서 맡은 업무도 쉽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집중해서 처리해야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루를 빠듯하게 써야 했고 전산 작업과 전화 통화, 관련 부서와의 업무 조정으로 온 신경을 쓰고 나면 퇴근 무렵에는 거의 녹초가 되기 마련이었다. 돌아보면 어떻게 일주일마다 책 한 권을 읽고 글까지 썼을까 싶은 시간이었다. 수업을 수료할 수 있었던 건 나를 만나는 기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리포트는 A4 용지 반 장을 겨우 채웠는데 첫 학기를 마치는 6월에는 석 장을 썼고, 마지막 수업인 12월에는 여섯 장을 채웠다. 책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특히 마지막 수업은 상담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나 자신을 상담자로 선정하고, 김형경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란 책을 정해 리포트를 제출했고 마침내 발표시간이 되었다. 수강생들 자료를 다 받고 나니 제법 두툼한 프린트물이 책상 위에 쌓였다. 지목된 참여자가 한 사람씩 발표를 이어갔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강사님은 글 전체를 줄이지 말고 모두 읽어보라고 하셨다. 긴 글을 읽어나갔다. 볼륨감 없는 내 역사를 다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발표가 끝나자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했다. 발표를 마친 직후에는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조금은 벅찼고 또 진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직에서의 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나에 대한 평가를 듣는 건 처음이라서 긴장도 되었다. 겁 없이 나를 드러낸 부분에 대해서 격려를 해주었다. 강사님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속의 문장을 소제목으로 뽑아서 쓴 구성이 좋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본인의 모습을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이라고 바라본 것이 감동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0 그렇다고 느낀다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0 도대체 엄마가 원하는 게 뭐야.

0 왜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에요?

0 생의 비밀은 자기를 아는 데 있습니다.

0 사랑은 자신을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 없는 방식.

0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위 문장들이 소설에서 뽑은 소제목이었다. 어떤 제목은 보자마자 울컥해서, 어떤 제목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선택한 것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해 주었고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문장이었다. 어쩌면 나는 책을 통해 나를 만남과 동시에 희미한 내 삶을 뚜렷하게 표현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긍정한 그 힘으로, 세상과 따뜻하게 연결되고 싶었는지도.


책 읽기 또는 글쓰기가 인생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통해서 *어제의 내가 반드시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내 속도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내 인생 첫마디가 생기게 된 것이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인생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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