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하듯 살다가
처음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던 때가 생각난다. 2020년 3월. 선거 준비로 한창 바쁠 시기였다. 2월 하순부터 심각해진 코로나 사태로 매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시했던 선거 담당자 교육이 동영상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단체 회의도 취소되고 주민 대상 강좌도 무한정 연기되던 시점이라 과연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까 걱정하며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선거업무가 시작되면 다른 업무 비중이 줄어들어야 했지만, 2020년은 모든 게 다 예상 밖이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마스크를 주민에게 지급하는 일이 추가된 것이다. 구청에서 동으로 전달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크기와 세대별로 나누고 통장님들께 리스트를 만들어 설명을 드렸다. 딱 맞게 세어서 나간 마스크가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모자라는 일이 발생했다. 마스크 5부제를 해야 할 만큼 나라 전체 수급이 어려웠던 때라 여유분도 적었다. 주민들의 전화도 당연히 많아졌다.
업무량과는 별도로 개인적인 삶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아니라 채워지는 뭔가를 잡고 싶었다. 그러던 중 글쓰기 모집 안내를 보게 되었다. 수업 시간이 선거 기간과 겹쳐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뒤로한 채 문의를 하고 신청을 했다. 첫 글쓰기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긴장되었다. 긴장은 내 습관이기도 하다. 독립서점도 처음 알게 되었고 서점에서 강의와 워크숍 등 여러 기획이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은 일대일로 진행되었다. 배우는 학생이 되어 보는 게 긴장이 되면서도 아찔하게 기분 좋았다. 사무실에서의 나와 글쓰기 수업에서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다른 태도, 다른 대화, 다른 시간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나이임에도 초보로 시작한다는 게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매주 돌아오는 목요일 저녁시간에는 새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다.
글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매주 글 한 편을 제출해야 하는데 꼭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쓰기 시작한다. 수험생이 벼락치기하듯 자판을 두드리며 빈칸을 채워나갔다. 대단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기가 힘든 것도 있고 한 문장 만드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했다. 그래도 써가야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썼다.
잘 쓰든 못쓰든 수업받으러 가는 날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모처럼 나한테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강사님이 이래서 이 문장이 좋았고 느낌이 더 살아났다고 짚어주면 무지하게 기뻤다. 그냥 속이 갑갑해서 쏟아놓은 문장이었는데 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다섯 편의 글을 쓰고 수업은 끝이 났다.
예전에 사주 카페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이랑 심심풀이로 보러 갔었는데 내 사주를 보더니 몇 년 동안 배움이 끊어졌다고 했다. 그 시기는 대학 때쯤이었다. 하긴 대학 때 난 책을 읽지 않았다. 도서관 카드도 만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핑계로 교과서 외엔 읽은 기억이 없고, 다시 책을 잡은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니까, 사주 본 사람의 말보다 배움이 끊어진 기간은 더 길었다고 봐야 맞겠다. 다시 돌아가라면 젊어진다 해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기지만 그래도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무조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잠시 놔버린 시기인 것 같고 그래서 많이 돌아온 것 같아 괜한 가정을 해보게 된다.
퇴직을 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책을 읽다가도 예전 일이 떠오르고 어떤 상황이 떠오른다. 꼭 그래야 했을까? 같은 답이 나오기도 하고 다른 방법이 생각나기도 한다. 십 년 후 열 살 더 많은 나를 상상해 본다. 어떤 언어를 쓰고 있을까.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지금은 다만 이것저것 소소한 계획을 세워보면서 꼼지락 거리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배움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많이 읽고 계속 쓰기도 하면서.
직장인이었던 나와 지금 모니터 앞의 나. 혼자 강을 건너온 느낌이다. 어느새 글은 한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 노트북을 덮고 기지개를 켠다. 유튜브로 닭고기 요리를 검색해봐야겠다. 오늘 같은 아침을 내일 또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