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나에게 말 건네는 밤

숙제하듯 살다가

by 다시 봄

1999년 12월 어느 저녁,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년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IMF로 연기되고 있던 발령이 이제야 난 것이다. 전화를 끊고 공기가 달라진 안방을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직장인이 되는구나.'

합격을 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얼른 9 to 6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게 정상인의 생활이고 밥값 하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어떤 조직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일단 아침에 집을 나서고 싶었다. 2000년 1월, 스물아홉의 첫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나긴 적응의 시간이었다. 처음 발령받은 동 주민센터에서는 각종 법과 관련된 서류를 발급하고, 직급으로 나눠진 조직의 작동원리를 눈치껏 알아가며, 주민 응대도 능숙하고 친절하게 해 나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후 여러 부서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은 말과 톤을 조정(당)하고 자부심과 모멸감, 웃음과 울음, 가슴 쪼임과 느슨함을 오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주변 환경은 바뀌어갔다. 10년이 넘자 위아래로 아는 직원이 많아졌고 20년째로 접어들자 아래로는 이름도 모르는 직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래방 회식이 당연했던 분위기가 저녁만 간단히 먹는 것으로 바뀌었고 경청 모드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꼰대가 될까 조심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나 상사의 억지스러운 요구를 자연스럽게 넘길 줄도 몰랐고 감탄이 나올 만큼 업무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인정받기를 원했다. 맡은 일에 집중했지만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조직과 조직 내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민원에 대한 대응, 이 삼 년마다 바뀌는 업무에 대한 적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동안 내 한쪽에서는 새로운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름을 붙인다면 ‘나에 대한 무지’라 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야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장녀라는 책임감과 부담감 속에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했다. 기준을 세워놓고 그 높이에 맞추려 애썼다. 어느 정도 성취도 있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다. 왜 그 높이여야 하는지, 정말 그것을 좋아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막연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자란 점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니 내가 제일 불편해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할 지점에 이르렀다. 2017년도에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수강했고, 2020년 3월,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다.


“두드러기가 났는지 가려워요.”

2020년 4월 선거 업무를 마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왼쪽 어깨 아래가 가려웠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이 지나 거울에 비춰보니 붉은 점이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바르던 연고를 집어넣고 피부과로 갔다.

“이거 대상포진이네요. 약 먹고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그리고 좀 쉬어야 합니다.”


피부과를 나서는데 그제야 어깨 아래가 톡 쏘듯이 아팠다. 죽을병도 아닌데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억울하기도 했다. 처음엔 하루 정도 쉬어야지 했다가 장기재직 휴가가 생각났다. 좀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굵은 글씨체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눈치는 보였지만 양해를 구하고 결재를 받았다. 회복하고 싶은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살펴보고 싶기도 했다.


작년 중간 관리자로 발령받을 때만 해도 1년이 지난 후 명예퇴직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퇴직이 아니라 ‘그냥 멈춤’을 위한 선택이었고 예상 밖의 일이 없던 인생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스물아홉 첫 출근에서 20년이 흘러 있었다. 왜 지금인지 왜 끝까지 가지 않은 건지는 천천히 물으려 한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지금은 이 두 가지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까.


이제 속도가 바뀐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충분히 자고 요가를 한다. 서두르지 않고 밥을 먹고 연한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고 느리게 글을 쓴다. 걱정이 떠오르다가 가라앉는다. 조급하고 어리석었던 나를 떠올려 본다. 가까운 기억부터 먼 기억까지 되감기 한다. 꿈에서 옛 동료들을 만난다. 원망하던 엄마를 궁금해한다. 놓쳤던 인연들을 생각한다. 지고 싶지 않아 주던 헛힘이 빠져나간다. 소중한 것이 바뀌고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다. 비우고 싶고 배우고 싶다. 스물아홉 나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면서 살아도 좋다고 말 건네 본다. 어느새 다른 길에 서 있는 나를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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