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의 연인 될 사람의 얼굴은……

미인도-신윤복, 18세기경

by 루시

한 때는(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미래의 나의 연인은 어떤 사람일지 몹시도 궁금했다. 지금은, 몹시 궁금하지는 않고 그냥 궁금한 정도로 해두자. 과거는 history, 미래는 mystery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궁금하다.(아니 어쩌면 그럴 인연이 있기나 한 것이 궁금한 건지도?)

피가 철철 끓어오르던 20대야 사랑이 가장 큰 관심사이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나에게 맞는 헤어 스타일이 뭘까가 솔직히 연인 될 사람보다 더 궁금하다.

하지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다.

과연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쌍꺼풀을 선호하지 않으니 무쌍이었으면 좋겠고, 될 수 있으면 하관이 발달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그렇게 나는 나만의 연인도를 생각해보곤 한다. 미남이냐 추남이냐는 사실 중요하지는 않다. 미추의 개념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기도 하고 내 맘에 들면 장땡이지 다른 사람의 시선은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정감’이 가는 얼굴이냐 아니냐는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김의 기준보다는 전체적인 인상, 풍기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목구비의 생김보다는 그 사람의 살아온 전력, 생각, 인성이 드러나는 전체적인 인상이야 말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거 history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므로 차갑거나 얼굴이 어둡거나, 걱정이 많아 보이거나, 불안해 보이는 얼굴은 내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정을 붙이기 어렵다. 냉정하고 차갑기보다는 찌질하고 질척여도 인간적이고 뜨거운 사람이 좋다. 햄릿형 인간처럼 이럴까 저럴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어두운 표정, 고뇌하는 지식인의 표정을 짓는 사람보다는 선선하게 그냥 그러자, 그러고 말자, 이런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뭐 내가 선호하는 기준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런 사람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기는 하다. (못내 씁쓸하군요.) 그래서 신윤복의 미인도를 봤을 때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나만의 미남도를 만들어 보다가 말았다.(부질없는 짓이잖아요?) 피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새어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신윤복의 고운 미인도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미인도-네이버.jpg

곱다. 곱디곱구나.

이 그림을 마주하면 대부분은 이런 인상을 받을 것이다. 풍성하다 못해 흘러 넘 칠 것만 같은 가체머리는 비단결처럼 매끈할 것이다. 그 풍성함에 나는 손을 뻗어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머리 옆으로 삐져나온 댕기는 시간의 흐름으로 지금은 무슨 색인지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으나 검자줏빛으로 추정되는 모양이다. 그 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더 아름다웠겠죠?

여인은 복스러운 둥근 얼굴형에 ‘무쌍’의 눈을 가지고 있다. 입술은 앵두처럼 도톰하고 코 역시 날렵한 ‘반버선코’가 아닌 복스러운 복코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둥글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날카로움이나 색스러운 느낌은 주지 않는다. 편안하고 차분한 인상. 조용한 여인일 것 같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어디일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인상을 주는 그녀는 매력적이다.

타이트한 남회장저고리와 풍성한 옥색치마, 거기에 빨간 속고름은 옷맵시를 살려준다. 자개로 장식된 듯한 노리개를 저고리 고름과 함께 잡고 있는 모습은 ‘이걸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 듯도 하고 거울을 보고 있거나 앞쪽에 있는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고 있는 듯도 하다. 어떤 매듭으로 마무리를 지을 것인가. 이 몸단장의 끝이 향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에 따라서 달라질 듯도 하지만.


盤礴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

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냈다


가슴에 그득 서린 봄기운을 담아 인물을 그리다. 여인과 봄이라…… 많은 사람들이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것인가 싶기도 하고. 꽃이 만발하고 화사한 꽃만큼이나 아름답게 치장하고 단장한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봄의 이미지와 많이 겹치나 보다. 그렇지, 둘 다 아름답지. 하지만 가을도 못지않은데 말이죠. 색색이 단풍이 들고 나뭇잎이 바람에 잎을 떨구는 것을 보면 역시 대단히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화사하지는 않다. 그래서 가을과 여인을 연관시키지 않는 것인지도.

여인은 확실히 미인이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봐도 그렇다. 얼굴 전체의 조화도 좋고 치우침이 없다. 이목구비의 생김 역시 ‘잘 났다’. 부모에게 감사해야 할 얼굴 생김을 타고났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내뿜는 인상 역시 곱다. 인생의 부침이 피해 간 것일까. 곱디 고운 꽃길만을 걸어온 것일까. 하지만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그녀도 본인이 사모하는 연인에게 거절당한 가슴 아픈 사연을 가슴 한편에 묻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련한 그녀의 시선은 그런 아픔을 간직한 것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 먼발치에서 저 ‘미인’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줄을 섰을 것이며 한잔 술에, 아니 차 한 잔이라도 같이 마셔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연통을 하고자 애가 닳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아련한 시선에 이끌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사람들의 발이 끊긴 깊은 산중에 들어가 나뭇잎이 절반은 떨어지고 절반은 색을 바꾼 가을색 깊은 어느 밤에, 그녀와 마주 앉아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녀의 사연을 듣고 싶다. 혹시 풍요 속에 빈곤을 겪고 있을지 모를 그녀의 속 깊은 얘기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러면서 그냥 빈곤을 겪고 있는 나의 처지에 위로를 받고 싶다. 우헤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