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사에서 내가 배운 것

by 은행원


모든 회사의 목적은 경제적 이윤 창출이다. 봉사단체가 아닌 한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기업은 직원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월급을 준다. 직원은 아무리 큰 성과를 내도, 아무리 작은 성과를 내도 월급을 받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큰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하면 그만이다. 결국 기업은 점점 더 크게 성장하고 개인은 여전히 비슷한 생활을 반복해나간다.


내가 다니는 은행은 매월, 매년 목표가 주어진다. 연간 목표, 분기 목표, 반기목표 등 끊없는 목표와 실적이 내려온다. 이번 달 실적을 100%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달에 또 리셋되어 새로운 목표가 주어지게 된다. 그 목표는 늘 비슷하지만 매월 중점 추진 사항이라는 것이 있어 어떤 달은 이 상품, 어떤 달은 저 상품. 이렇게 매번 다른 실적을 추진해야 한다.


회사 생활은 누군가의 지시를 전달받아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매월 목표가 주어지면 직원들과 합심하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왕 하는 회사 생활 인정도 받고, 열심히 하면 나에게도 득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정욕구라는 것을 버리는 순간이 왔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해주게 된 것이다. 자존감이 훨씬 높아진 순간이었다.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 비결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장농면허를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내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하면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 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기점이 되자 나의 내면과 회사에서 해야 하는 역할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부추키는데 현실은 10시간 이상 회사에서 지내며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나갈 뿐이었다.


나는 같은 일도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환경미화원이 자신의 일을 쓰레기나 치우는 일로 규정했을 때와 지구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직장 생활을 누군가의 불편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규정짓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관점이 하나의 직장인에서 기업가의 관점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직원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내 스스로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끝을 향해 달리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가 배운 것은 세 가지이다.


신입 사원때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배웠다. 한 조직 내에서 서열이 정해져있고 그에 따라 해야 할 행동들이 있으며, 직장 생활의 매너, 행동 방식 등 기본적인 것에 대해 배운 시간이었다. 실수할 때는 혼나기도 하고,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신입 사원 딱지를 떼고 난 후에는 업무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금융을 모르던 내가, 손님들에게 상담하기 위해 퇴근 길에 자료를 들고 퇴근하고 출퇴근 길 공부하고, 주말에는 시험을 보고, 그 어렵다는 cfp 를 취득하기 까지. 오랜 시간 동안 금융권에서 일하면서 기본적인 금융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배운 것은 기업가가 되는 것이다. 한 회사의 직원이 되어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돌아가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 사업을 꾸려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회사가 어떻게 규정을 정하고, 어떻게 직원을 채용하며 어떤 복지를 주고 있는지. 등등.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지난 코로나로 인해 한 지점의 직원 반 이상이 자가 격리였던 시기가 있다. 나 역시 자가격리 되었던 직원 중 하나였는데 그 당시 대기업의 시스템에 놀랐다. 직원 반 이상이 없어져도 은행은 너무나 잘 돌아갔다. 다른 지점에서 파견을 받으면서 어찌어찌 은행은 운영이 되었다.


내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아도 회사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나를 대체할 사람은 이미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애초에 될 수 없었다. 기업은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전 직원을 그에 맡게 교육시킨다. 내가 그만둔다면 아쉬운 것은 회사가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회사는 고마운 곳인 동시에 내가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준 곳이자, 현실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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