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사표 한 장은 품고 산다. 직장인이라면, 언젠가 때려쳐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생각을 좀 더 일찍 시작했다 10년 전에도 퇴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땐 진심이 반도 섞이지 않은 습관처럼 하는 말이었다. 미래가 막연했고 불확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년 전부터 나에게 퇴사는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유튜브나 티비, 인터넷 뉴스 등 세상에 조금 단절된 삶을 사는 편이다. 특히 뉴스는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고 사건 사고 같은 것은 되도록 피한다. 세상에 시끄러운 일이 많다. 회사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럽기 때문에 내 삶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독서, 글쓰기, 술 한잔 등.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싫어하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출퇴근 길에 잠깐 보는 유튜브. 누군가의 팬이라기 보다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여러 가지 채널을 짧게 보고 다른 채널로 돌린다. 그러던 중 문득 누군가에게 좀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유튜브>라는 채널을 통해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전 실제로 유튜브도 운영하였다. 아무 강의도 듣지 않은 채 혼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은행 취업하는 법, 육아하는 법, 책 리뷰 등. 지금 생각하면 타겟도 명확하지 않고 내용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 얼굴이 알려지면 회사 생활에 지장이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난 뒤엔 유튜브 대신 블로그에 글을 썼다. 거의 매일 새벽 기상을 하고 글을 썼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회사 다니면서 재테를 하고 글을 쓰는 나는 직장인이자 작가이자 투자자였다.
부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본업 이상이 되어야 퇴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사실 그 수준은 되지 못했다. 부업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컨디션이 되지 않았다. 겸업금지라는 내규가 있었다. 다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본격적으로 해보기 위해서는 나는 <퇴사>를 선택해야 했다. 퇴사하는 시점에 명확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길 원하는 비전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지 수개월.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는 먹어가고 있었고 내 연봉은 높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내 시간과 돈을 바꾸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언젠가 노동력이 사라지게 되면 회사에서도 내 쫓기듯 나와야 하는 수많은 직장인 중 하나.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차피 끝이 있는 회사생활을 내 스스로 먼저 그만둘 것. 그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예전부터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때려칠거야. 라는 말을 밥먹 듯 해왔지만 이번에는 남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해볼까? 라고 말했을 때 그래, 해봐.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나를 말렸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니,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가는 직장을 왜 나오려고 하니, 그냥 다녀, 돈 많이 받잖아.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 퇴사해야할까? 대신 나에게 수없이 물어봤다.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생계는? 소속감은? 내 커리어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고 결심이 든 어느 날이었다.
정기 인사 시즌이 곧 다가오고 있었고 직원들 하나씩 돌아가면서 지점장님과 면담을 시작했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적당한 게 육아밖에 없었다. 육아도 퇴사의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 내가 그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퇴사의 진짜 큰 이유는 육아가 아니라 내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큰다. 그리고 내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라는 빌미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나중의 내 모습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육아도 천성에 맞지만, 무언가를 벌리고 일을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가 나의 진짜 퇴사의 이유였다.
지점장님, 저 아이들 육아 때문에... 그 다음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뭐? 무슨 말 하려고? 그만둔다고?
지점장님 눈이 커진다. 왜 그만두려고 하니, 내가 너라면 오래 다니겠다. 친정엄마가 바로 옆에서 봐주시는 게 얼마나 큰 복 인줄 아니. 나는 애를 남에게 맡기면서까지 일을 다녔어 아이들 초등학교 4학년 넘어가면 엄마가 일하는 걸 좋아해. 그리고 은행 다닌다고 하면 얼마나 자부심 느끼는 줄 아니. 너 열심히 다녀야지. 남편이 돈 잘 버니? 육아도 육아지만 니 커리어도 있는데...
지점장님은 본인이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지점장님은 여성이었다. 지금이야 여자 지점장님이 자주 보이지만 사실 경쟁이 치열한 직장생활에서 한 지점의 장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일에 대해 열정적이고 자부심이 넘치는 분이셨다. 은행에 대한 프라이드가 넘치는 분이셨다.
30분 넘게 면담을 하고 나왔다. ㅇㅇ아~ 우리 여기서 함께 잘 버텨보자~ 라는 답장이 왔다.
버틴다..라는 말. 버틴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었다. 은행을 30년 이상 다닌 상사들도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월 소득이 필요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행복한 순간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승진을 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연봉은 더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과중될 것이다. 나는 승진해서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것을 꿈꾸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많았다. 직장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월급, 복지, 명함.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여태까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직장은 큰 도움을 준 곳이었다.
내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직장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었다. 일을 하면 돈을 벌고 일을 하지 않으면 돌을 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버는 돈 마저도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누진과세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연봉이 1억이어도 매월 받는 월급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퇴사는 이야기 하는 순간 바로 결정되는 것인 줄 알았다. 입사는 쉬었는데 퇴사는 쉽지 않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