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갈수록 확신이 든다.

by 은행원


퇴사를 결심하고 사무실을 계약한지 5일째이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 출근을 한다. 커피를 한 두잔 마시고 9시 반이 되면 열리는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고객들을 응대하고 그렇게 3시 반까지 일을 한다. 점심은 언제 먹게 될지 기약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은 2시에 식사를 갔다.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은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상사분들의 모습은 너무 대단해보였다. 나도 열심히 해서 저 자리까지 가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내 경제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사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매월 주어진 목표를 힘겹게 채우고 나면, 또 새로운 목표가 주어졌다. 은행생활을 하는 동안 영원히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충전되기도 전에 또 사용되어야만 하는 소모되는 배터리 같은 존재였다.


밖에서 보는 은행원은 멋지다. 데스크에서 앉아서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 전형적인 화이트컬러다.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으니 은행에 들어갔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입사하는 친구들보면 다들 능력이 특출나다. 하지만 입사해서 은행생활을 하다보면 느끼게 된다. 부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조직은 특별한 아이디어 보다도 규정에 맞게 일처리를 하는 공무원 스타일을 원하는 구나.


은행의 업무는 대부분 누군가 시키는 일이다. 고객의 요청에 의해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많다. 카드가 안되요, 비밀번호를 바꿔주세요, 대출 해주세요, 통장 만들어주세요. 등.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시간이 대부분이다.


15년간 많은 고객들을 만나고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지내왔는데, 어느 날은 문득 앞으론 내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것에 있었다.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데, 그것의 상한선이 정해져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대안도 만들어두지 않은 채 나는 사무실을 계약하고 퇴직을 하기로 배수의 진을 쳤다.



나는 사실 잘 될거란 생각이 있었다. 아니, 잘 될거라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텐데 잘될까? 라는 의심을 가져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도 믿는다.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출나진 않아도 꾸준히 하는 것은 잘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게 내 일이라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퇴직 하기 전 내게 남은 자금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대출이자, 생활비, 공과금 등 퇴직금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투자해놓은 아파트가 있다. 일 년에 한채 씩 매도해서 생활비로 사용할 계획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일명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기 프로젝트였다.



15년간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자.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죽이되든 밥이 되든 남는 것은 있을 것이다.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더 늦기 전에 퇴사를 하기로 다짐했다.


모두가 나의 퇴사를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준비한다. 오직 나를 응원해주는 단 한사람 남편이 있다. 사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있다. 나의 첫 직장이고 내가 15년간 몸담은 곳을 떠나 홀로 내 이름 석 자로 독립한다는 것이 나를 긴장되게 만든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되겠어? 라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안주하는 사람.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라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지금 내가 직장생활을 지속한다면 매달 꼬박꼬박 주어지는 월급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성장은 딱 거기까지 일 것이다. 매년 올라가는 연봉에 점점 더 집착하여 명예퇴직까지 버티게 될 것이고 퇴직 후엔 뭘 해야 할지 몰라 노후의 삶을 걱정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퇴사 후의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었다. 작가가 될 수도, 프리랜서가 될 수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낼 수도 있었다.


5년 뒤의 내 모습이 되어 지금의 나를 바라보았다. 5년 뒤에도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과연 행복할까? 대답은 아니였다. 내려놓는 것은 분명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더 가치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니 그 후의 진행은 일사천리로 되었다.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돈 때문에 일하지 않을 것이다. 내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펼치면서 지금보다 행복하게 일하고 돈을 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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