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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an 29. 2024

23화 여보, 이게 김치찜이라는 건데......

내가 끓여 봤어


아침 7시. 손목에 차고 있는 가민이 진동을 다. 여느 때 같으면 이불속의 따스함을 즐겨야 하건만 벌떡 일어난다. 그것도 아내가 깨지 않도록 아주 조용히 말이다.


부엌으로 나와 요거트를 준비한다. 호박씨와 블루베리, 호두를 넣고 콩가루도 한 숟가락 넣는다.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사과도 곱게 깎아서 잘라 놓는다. 구운 계란도 껍질을 벗겨 놓는다. 아내가 날마다 차리는 아침상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삼시세끼 밥상은 내가 다 차릴 거야.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도 다 할 거니까. 당신은 말로만 해."

"정말?"

"그럼. 다친 걸 핑계 삼아 당신은 황후처럼 누리라고."


8,9번 늑골 골절로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2주 정도 지나니까 아내는 움직임이 많이 편해졌다. 통증도 많이 가라앉고 걷는 것도 나아져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니 천방지축 휘저어 놓은 부엌이 마음에 들지 않고, 세제나 흘려놓은 세탁기며, 감자며 고구마며 꼭 하나씩은 굴러다니는 뒷베란다는 아내의 미간을 찌푸려 놓았을 게 틀림없다. 나름 최선을 다해 내 딴에는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이니 오죽할까.


"당신이 애쓰는 거 아는데, 그래서 고맙긴 한데, 이왕 하는 거 깨끗하게 하면 좀 좋아."

"알지. 내가 한꺼번에. 싹 치우려고 했거든. 내가 더 노력할게."

"알았고, 나 오늘부터 카페에 나갈 거야."

"무슨 소리야. 안돼. 통증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는 침대에서 소파에서 뒹글뒹글 햇볕이나 즐기면서 쉬어야지."


그러나 아내는 기어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3시부터 근무시간이라 점심을 먹고. 데려다주었다. 돌아와서 집안 청소를 하다가 저녁밥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알려주는 대로 아내의 손을 대신하여 자르고, 썰고, 끓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나 혼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여보, 나에게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유튜브가 있사옵나이다.'


김치찜이라고 검색해 보니 동영상이 가득하다. 백종원 님은 아무 걱정 말고 김치부터 꺼내오라고 한다. 이보은 님은 당신만 믿고 팔을 걷어 부치라고 한다. 어느 분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지? 누구면 어때. 되는 대로 해보는 거지.


묵은 김치를 한 포기 꺼내어 알려주는 대로 쭉쭉 찢어 놓았다. 통삼겹살을 꺼내어 큼직큼직하게 썰어 된장을 한 숟가락 넣고 조물조물해 놓았다. 조물조물하는 느낌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다시 요리를 한다면 순전히 이 조물조물하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양파도 한 개를 8등분으로 썰어놓았다. 대파는 아내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사용하는 것을 한 줌 꺼내서 준비했다. 마늘 다진 것도 한 스푼을 덜어 놓는다.


적당한 크기의 냄비를 꺼내 묵은 김치를 바닥에 깔아 놓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넣는다. 양파를 덮고 대파와 마늘도 넣는다.  이제 물 세 컵을 붓고 뚜껑을 열어 둔 채로 센 불로 5분 정도 끓여준다.  센 불이 뭔지 몰라서 전기레인지의 숫자로 최대로 올려놓았다. 뚜껑을 덮고 20분 정도 끓여준 다음, 중불로  20분을 끓였다. 이보은 요리사가 하라는 대로 흉내를 내보는 것인데 김치찜이 끓고 있는 것보다 내 걱정이 더 끓는다. 끓어 오르다 못해 온 집안에 넘쳐난다.


'이러다 망하는 거 아냐? 아내가 돌아오고 나서 시키는 대로 했어야 했는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40분을 끓이는데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맞다. 팬을 돌려 냄새를 빼야지.'

서둘러 팬을 돌린다.

넓은 접시를 꺼내어 김치찜을 곱게 담는다. 처음에는 김치를 가지런히 담을까 하다가 인위적인 느낌을 줄 것 같아 되는 대로 흩트려 담았다. 그리고 고기를 접시 가장자리를 따라 둥그렇게 줄을 세워 올려놓았다.


"내가 요즘 당신이 하던 일을 해보니까,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야."

"그거야 당신이 처음 해보니까 그런 거지. 막상 몸에 배면 별 거 아냐."

"힘들더라고.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은 위대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위대한 예술?"

"내가 김치찜을 해봤거든. 그리고 내린 결론이야. 음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

"이거 정말 당신이 했다는 거야?"

"응, 이게 김치찜이라는 건데 비슷하기는 한가?"

"우와! 대단한데. 정말 맛있어. 대박."

아내는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할아버지, 정말 맛있어요."

"이거 진짜 할아버지가 만들었어요?"

"아빠, 맛있게 잘 끓이셨네."

마침 할머니 병문안하러 온 손주들과 딸도 엄지척을 한다.


아내가 갑작스럽게 다치게 되었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수발을 들었다. 여러 가지로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이제 3주 가까이 되고 보니, 아내의 통증도 많이 가시고 움직임도 훨씬 자유스럽게 되었다.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다. 치료가 되어 가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40년이 다되도록 집안일을 다하고, 밥을 먹여 준 아내의 고마움을 깨닫게 해 주신 것에 감사했다.


"여보, 이제부터는 당신이 밥상을 차려주세용. 만날 김치찜만 먹어도 괜찮으니까."

아내가 장난을 치는데 괜히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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