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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Aug 12. 2024

[태백고원 여행] 2 한강을 품은 검룡소

새벽이 흐르는 숲을 뚫고 나오는 하루 2,000톤의 맑은 물 검룡소


검룡소 주차장에 내린 새벽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바람까지도 재워버린 시간,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고요합니다. 새뜻합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낮에는 해발 855m에 자리 잡은 기차역 추전역에서 비를 맞았습니다. 열차는 다니지만 서지 않고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추전역은 추레했습니다. 한때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던, 카페와 음식점까지 불을 밝히던 추전역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두꺼운 고요와 적막을 두른 채.



검룡소로 가는 이른 아침, 숲 속에는 제대로의 고요가 가득합니다. 낮에 접했던 추전역의 고요는 족탈불급입니다.


평생을 산길을 걸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운동화를 신고 덕유산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덕유산에 들어선 우리들 넷은 가엾다는 눈길을 받았습니다. 버너도 없이 산에 올랐고, 말라붙은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감자를 넣은 된장국에 말입니다. 그때는 산에서 불을 피워도 되었습니다. 그때 광주에서 오셨다는 아버지 같은 분이 식빵과 통조림 몇 개를 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삼공리에서 올라 인월담 근처 마을에서 텐트를 쳤습니다. 우리가 내민 쌀에 눈을 동그랗게 뜬 할머니가 김치를 한 봉지 주었습니다. 첫 산행은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산길을 걸었습니다. 서른이 넘어서면서부터 산행다운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부터 숲길은 고요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스며들었고. 숲의 정령들은 맑은 기운을 풀어놓았습니다. 오늘 검룡소로 향하는 숲길도 말갛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검룡소는 한강을 이루는 깊은 산골에서 솟는 힘 있는 샘입니다. 하루에 2,000톤의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고 합니다. 시작은 하나의 작은 샘이었지만, 흘러가며 살이 붙고, 몸을 키워 나라의 젖줄  한강으로 자랍니다. 다 그런 건가 봅니다. 나의 등산처럼 말입니다.





하나의 무엇이 시작될 때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상, 효시가 그것입니다. 남상은 중국의 양자강 같은 큰 강도 잔에서 넘치는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효시嚆矢는 전쟁할 때 처음으로 쏘는 화살은 깍지를 붙여 소리가 나게 해서 공격의 신호로 사용했다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검룡소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이 작은 샘에서 거대한 한강이 시작된다고 하니 마음이 울컥합니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의 황지, 금강의 출발점 장수의 뜬봉샘, 섬진강의 발원샘 진안의 데미샘. 그 앞에서 항상 느끼던 마음 그대로입니다.

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은 가득한 설렘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그 마음 말입니다. 언제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끼가 덮인 골짜기를 힘차게 달려 나가는 맑은 물 앞에서 도도한 한강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골짜기,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을 만나고, 어우러져 거창한 강을 이루듯, 만나는 사람들과 어깨를 겯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고요한 새벽에 말입니다.



태백은 언제 오든  싱그럽습니다.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산소도시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하였지만 태백을 떠나는 마음은 개운했습니다. 짧은 여행에서 긴 여운을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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