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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Sep 17. 2023

2화 제대로 된 어둠으로 그리는 별

속울음을 우는

        

별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은 고스란히 그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남아 있었다. 제대로 된 어둠이 오롯이 내려앉은 밤하늘에서 하나, 둘, 셋, 하늘의 별을 세어 본다.      


괴물 고래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페르세우스, 그가 탔던 말 페가수스,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딸 안드로메다를 위험에 처하게 했던 카시오페이아.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눈물의 이야기들이 하늘에 가득 담겨 있다. 밤하늘은 그대로 그리스 신화가 펼쳐지는 세상이었다. 신들의 세상을 올려다보는 인간들의 마음은 언제나 신이 되고 싶었을까.      


봉화 청옥산을 오르기 위해 31번 도로에서 조금 올라와 등산로 입구에 있는 숲 해설사 사무소에 차를 세웠다. 손바닥만 한 공터에는 제대로 된 완벽한 어둠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이리저리 어둠을 밀어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차를 달래놓고 애써 따라온 밤도 옆에 누였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불빛을 이겨내지 못해 거무튀튀한 도시의 밤을 피해 허위허위 달려온 이유는 온전한 어둠을 즐기기 위함이다.      

차에서 맞는 밤은 여러 켜의 생각들이 자리 잡고 들어앉는 까닭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밤을 수놓는 요정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돌려세워 보지만, 시트를 접어 펼쳐놓은 SUV 차량의 좁은 공간에는 온갖 상념들이 가득 차올랐다.      


차박은 혼자일수록 맛이 있다. 차 안으로 가득가득 밀려들어 오는 밤의 요정들을 혼자서 마주할 때 객창감의 농도가 훨씬 진해져 낯섦의 맛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여행은 좀 어그러지고 불편할 때 제맛이 난다. 무엇인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그래서 헐거운 듯하게 이어지는 동선들에서 여행은 새로운 시작을 싹틔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차는 멈추었고, 밤은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뒤척이다가 잠에서 깨었을 때, 침낭 속에서 느껴지는 뽀송뽀송한 느낌은 여전하였다. 조금 열어둔 차장의 틈으로 파고드는 산골의 찬 기온이 차 안을 흔들어댈수록 침낭 안에 가두어 놓은 온기는 아늑하다. 차에서 자는 잠이 잘 익은 고구마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밖으로 나왔다. 차박은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잠자는 중간에 침낭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쐬며 밤하늘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차박의 가운데 토막이다. 기대했던 대로 밤하늘은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별이었다. 별이 펼쳐내는 세상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가지의 불빛만 내다보던 세속에 찌든 눈을 한순간에 씻어낸다.      


페르세우스의 품에 안겨 눈물짓는 안드로메다 공주의 눈빛을 본다. 흔히 보는 영웅 소설의 한 장면처럼 날랜 동작으로 안드로메다를 구해낸 페르세우스. 그의 품에 안겨 페르세우스의 심장 소리에 빠져드는 안드로메다. 밤하늘을 수놓는 사랑 이야기는 오늘 밤을 허락한 청옥산과 청옥산이 만들어 놓은 밤이 안겨주는 선물이다.      

사랑은 어느 때든 애련하기에 고귀하다. 강을 건너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따라오는 아내를 저버리고 푸른 강물로 뛰어들어버린 남편, 늘 술에 절어 살던, 그래서 머리까지 하얗게 세어버리고, 정신까지 잃어버린 남편, 그 보잘것없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뒤따라 몸을 던진 아내. 서른한 살의 나이로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남편 ‘원이 아버지’의 무덤에 자신의 마음을 곱게 써 답장받지 못할 편지를 써 놓았던 ‘원이 어머니’. 밤하늘에서 빛나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때까지 이어질 것인가. 사랑은 굴절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인가.      


주차장의 좁은 공간에 앉아 주춤주춤 상념의 조각들을 이어본다. 본질은 어떤 모습의 현상에 둘러싸여 있어도 흩어지지 않는다. 장맛비가 퍼붓고 있어도 태양은 밝은 빛을 잃지 않고,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들은 제 본모습을 지키고 있다. 현상에 밀려나 있는 까닭에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차박에서 무엇을 얻을까. 내가 추구하는 차박은 어디까지나 차 안에서 밤을 즐기는 것이다. 불을 피워 고기를 굽지 않고, 조명을 밝혀 밤을 밀어내지 않는다. 밤의 한 부분이 되어 이리저리 얽히는 상념들을 질서 있게 묶어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차박이다. 밤의 하늘이 내려보내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흘려버린 시간을 잡아당겨 반추할 수 있다면 나는 제대로 된 차박을 즐기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차박’ 뒤에 아무런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차박 여행’은 ‘여행’에 힘이 실리고, ‘차박 캠핑’은 ‘캠핑’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된다. ‘차박’은 날 것 그대로 ‘차박’이어야 한다. 사실 나는 ‘차박’보다는 ‘차재(車在)’라고 말하고 싶다. 차에 있으면서 내 생각을 키워가는 것.     


비가 내리는 날은 차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저수지로 간다. 경치가 좋은 곳도 아니고,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곳이 아닌 까닭에 차를 세우기 좋은 곳은 항상 비어 있다. 시트를 접고 트렁크 문을 열어 놓고 앉은 듯 누운 듯한 자세로 빗줄기에 마음을 얹고 수면에서 일어나는 파동에 온새미로 빠져버린다. 생(生)이 있고, 동(動)이 있는가 하면, 비(悲)와 희(喜)가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정(靜)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여행을 재정의한다.     

 

여행은 분명 관광의 범위를 넘어선다. 여행은 단순히 무엇을 들여다보고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더 넓은 개념이니까 말이다. 여행에는 반드시 사색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카페에 앉아서도 창밖으로 매달리는 상념들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차 안에서 눕거나 걸터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와 함께 빠져드는 느슨하고 평안한 시간은 쉽게 건져 올릴 수 없었다. 이따금 끼어드는 소음이 애써 가다듬은 생각의 깊이를 갈라놓을 그때, 다시 돋아나는 것은 또 다른 몰입의 큐브였다. 부러진 가지에서 다른 가지가 돋는 것처럼.     


청옥산은 제대로 된 어둠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초가을의 밤하늘이 담고 있는 사랑이 서사시를 쓰고 있었다. 페르세우스와 다정하게 안겨있는 안드로메다. 그리고 꿀 떨어지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카시오페이아. 제대로 된 어둠만이 보여주는 사랑의 본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어둠을 잃어가고 있다. 야금야금 파고든 빛에 점령되어 버린 이다. 빛은 더 많은 시간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의 눈을 가렸고, 우리는 마음을 잃게 되었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밤하늘을 빼앗겼다. 무수한 별을 잃었고, 그에 담긴 애련한 사랑도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마음속에 밤하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빛의 울타리를 빠져나와 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속울음을 운다. 그것을 나는 ‘차박車泊’이라고 말한다. 풍요로운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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