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 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만경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조정래, 『아리랑 1권 14쪽』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 이곳이. 유일한 곳
기울어가는 오후 네 시. 무엇을 하기에는 늦은 시각이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이른 시각에 나는 들판이 시작하는 감곡역(폐역) 육교 위에 서 있다. 제대로 된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지평선 地平線
편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
사전적 정의가 이렇다면 조정래 선생의 말대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한 곳이다. 어느 계절이든 와서 보라. 황혼이 물들어 갈 때 이곳에 서 보아야 한다. 해가 가라앉는 것은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도 똑같은 일몰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몇 곳을 걸음해야 할 사정에 쫓겨 오늘은 일몰 직전에 찾았지만, 추수를 다 끝내고 난 텅 빈 벌판에 내려앉는 황혼을 즐기기 위해 다시 찾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이다. 며칠 일찍 왔더라면 그야말로 황금들녘의 가을 잔치를 흥건하게 누렸을 것이다. 며칠 늦은 탓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여름내 흘린 땀을 상당히 거두어들여 버렸다. 통통히 영근 가을 들판에 안기고 싶었던 마음 안으로 밀려드는 아쉬움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나 발걸음은 흥에 겨웠다.
지금 걷고 있는 논두렁은 탐탁하게도 벽골제 제방 안쪽이다. 지금은 이야기로 전하고, 그에 따른 수문의 흔적이나 겨우 남아 있지만, 삼국시대에 제방을 쌓아 축조하였다는 기록과 그에 따른 지형과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벽골제에 갈 때마다 의문을 갖는 것이지만, 들판의 한가운데에 제방을 쌓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현장에서 둘러보면 도저히 제방을 쌓을 지형이 아니고, 삼국시대에 과연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를 쌓을 능력도 없었을 것이고, 쌓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학계에서도 벽골제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눈길이 막히지 않는 곳, 제대로 된 들판, 그야말로 끝이 없는 들판. 그래서 붙여진 이름 ‘징게맹갱 외에밋들’. 지평선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황금빛이 넘실거리던 호남의 그 넓디넓은 들녘, 한가운데에 차를 세웠다. 들녘의 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얻어 들어보려는 심사이다. 들녘의 밤은 어둠보다 더 두꺼운 침묵이었다. 그것은 고요보다는 적막寂寞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자생적으로 솟아나는 소리, 그것은 어딘지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고요를 넘어 적막이었다.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과 어둠에서 쏟아져 나오는 적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제의 수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책장에 담겨 있는 인물들의 쓰라리고 피 먹진 삶의 한 가닥은 아닐까. 통랑한 가을빛을 안고 거두어 낸 일 년 농사를 송두리째 빼앗겨야 하는, 거기에 사정없이 짓밟혀야 하는 소작농들의 절규가 세월에 눌려 묽어진 것이, 지금 들판을 가득 채워버린 이 어둠은 아닐까. 그것은 그래서 한 맺힌 아리랑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 들판을 걷는 걸음에 힘이 붙지 않았다. 도도하게 흐르던 기세가 꺾여버린 원평천의 제방 위에 앉아 어둠 속으로 눈길을 끼워 넣어본다. 켜켜이 쌓여 있는 세월에 삶의 애환이 그대로 고여 있다. 어린 시절 원평천은 우리들의 수영장이었고, 낚시터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들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메뚜기를 잡아다 구워 먹었고, 도랑의 물을 품어내고 물고기를 잡으며 치기稚氣를 즐기고 다녔다. 어른들은 원평천의 물을 끌어 농사를 지었고,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고 황금빛 가을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쌀을 거두어들였지만, 창고에 제대로 담아 놓지도 못하고, 비룟값으로, 농약 대금으로, 자식들 학자금으로 다 털렸다. 정작 어른들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볏짚을 팔아 쥔 푼돈이었고, 그것마저 자식들 입에 넣어 주고, 당신들은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게 전부였다. 들녘은 풍성했으나, 들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그들은 늘 허기에 내몰렸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가슴 아픈 삶이었다.
들판의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그만큼 밤은 깊어간다. 들녘을 적시는 원평천의 제방 위에서, 타고 넘는 가을의 한 밤은 차고도 무거웠다. 차 문을 열었다가 닫고,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때마다 차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들판의 이야기들은 모양은 많이 달라졌지만, 느낌은 그대로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있다. 이곳에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땀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소의 목덜미에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매어 논을 갈지 않고, 트랙터가 몇 바퀴 돌면서 논을 갈고, 모를 심고, 익은 벼를 털어내고 있어도 아직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에 들판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허리가 굽고, 눈이 어두워졌지만, 아직 들판은 그들이 딛고 살아가는 디딤돌이다.
밤을 달려온 새벽이 시나브로 어둠을 걷어내고 있다. 밤새도록 쌓아 놓았던 어린 시절과, 농부들의 허리 굽은 삶과, 그들이 안고 있는 애환은 어둠을 따라 몸을 감추어 버렸다. 그 자리에 다시 가을의 햇살이 내려앉을 것이다. 농부들은 남은 논의 벼를 거둘 것이고, 밤은 어둠을 데려 올 것이다. 그리고 들판은 다시 들판과 더불어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거운 이야기들로 가득 찰 것이다. 조금만 눈여겨 들여다보면 생생하게 드러나 보이는 애절한 이야기들이 들판을 두껍게 덮을 것이다.
벽골제에 와서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들판을 바라보아야 한다. 벽골제가 흐벅지게 다져놓은 들녘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침을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 하룻밤쯤은 들판과 농부들에게 내어주고, 나까지도 버리고 들판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며칠을 덜어내어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어도 좋으리라.
지평선을 이루는 유일한 들판에서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들판의 밤을 오롯이 품어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지평선을 바라보아야 한다. '징게맹갱 외에밋들'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