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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Oct 30. 2023

6화 정말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었을까.

순천만에서는


짙은 어둠을 헤집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환기를 위해 조금 열어둔 차창의 틈을 파고들어 온 바람은 침낭 주변에서 쿵쾅거리고 있었다. 차박 여행을 이루고 있는 하나는 차창의 틈으로 파고들어 오는 한 줌이나 될까 말까 한 바람이다. 특히 가을의 한가운데에 차를 세웠을 때는 바람은 뾰족한 창끝을 들이밀며 요란스럽고도 집요하게 찔러대는 것이다. 앞 좌석의 등받이에 두꺼운 커튼을 드리워 막아보지만 바람은 연체동물같이 온몸을 변형시켜 가며 나의 침실을 점령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령군 같은 바람도 거위 털로 가득 채운 필파워 2000을 자랑하는 침낭으로 감싸고 있는 내 몸에는 털끝 하나도 건들지 못했다. 거위 털 침낭의 안쪽은 부드럽고 아늑했으며, 평화로웠고 그래서 행복이었다. 뽀송뽀송한 침낭 안의 시간에 몸을 누이고 헤드 랜턴에 의지하여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짧은 소설은 읽을 때마다 가슴께를 짓눌렀다. 소설의 공간인 ‘무진霧津’의 실체인 순천만 와온해변의 산자락에 차를 세우고 밤을 밝혀서 읽는 오늘의 『무진기행』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까. 안개에 덮인 순천만을 그려보며 책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꼭 ‘무진霧津’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순천만의 새벽은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참 싱싱했다. 산자락을 타고 내린 공기는 간밤의 찌든 때를 온전히 씻어낸 청아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갯벌에서 뒹굴던 날 비린내가 드문드문 끼어들기도 했지만, 새뜻한 내음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들숨 날숨을 따라 신선함이 묻어났다.      


좁은 산길을 따라 걸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붉은빛으로 점철된 황혼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 말갛게 흐르고 있는 하뭇한 느낌은 그대로 또 하나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여행은 혼자일 때 제대로 살아나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거기에다 분명한 계획을 세운 선線을 그어 놓지 않았다면 비단 위에 꽃을 얹어 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는 마음을 풀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굳어있거나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휴대전화를 항상 꺼두어야 한다. 현실과 담을 두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념무상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휴대전화의 영역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다.     

 

『무진기행』의 ‘윤희중’은 그런 점에서 완벽하게 서울의 현실을 벗어던졌다. 무진霧津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무진의 안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려버리는 안개야말로 ‘윤희중’의 서울을 다 지워버리는 존재였다. 안개가 현실이 다 지워버렸을 때, ‘윤희중’은 ‘하인숙’을 만났다. 그래서 ‘하인숙’을 받아들이게 된다.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발아래로 순천만의 고요가 쌓여 있다. 두고 온 세상은 잊어야 한다. 땀 흘려 살아왔던 지난 세월 또한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의 실체를 온새미로 누려야 제맛의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순천에 여러 번 왔고, 지금 걷고 있는 산길도 익숙한 길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무진기행』을 안고 걷는 걸음은 무엇인가 나를 흔들고 있는 까닭에 어딘지 낯섦이 가득하다.      


‘희중’은 처음으로 만난 ‘하인숙’에게서 사랑의 감정이 아주 쉽게 돋아나는 것을 보았다. 서울에 보장되어 있는 자신의 영달을 뿌리칠 만큼 ‘희중’은 금방 무너졌다. 그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몸을 섞었다. ‘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으나, ‘희중’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일탈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속물’의 행동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 했다가 거두어들인 ‘희중’은 바로 ‘속물’이었다.       


나는 거짓말로써 그를 위로했다. 박은 가고 나는 다시 ‘속물’들 틈에 끼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여행은 한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여행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인가. 무너져버린 ‘희중’을 일깨운 것은 아내의 ‘전보’였다. ‘희중’은 아내의 ‘전보’와 맞싸우며 버티었다. 그리고 타협했다. 이번의 무진기행만큼은 긍정하겠다고. 그리고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 아가겠다고. ‘희중’은 서울에 보장되어 있는 현실을 놓지 못한 것이다.      


순천만은 도도하게 펼쳐져 있었다. 산 위에서 나는 그러한 순천만을 바라보고 있다.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를 나는 제대로 맛보고 있는 것일까.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폭은 어느 정도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고해야 할까. 두고 온 현실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를 담보해야 할까.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희중’은 무진을 떠나고 있다. ‘인숙’에게 쓴 편지를 망설이다가 찢어버린 ‘희중’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무진을 안개가 가리고 있던 무진을 떠나 아내와, 제약회사 전무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서울로 돌아가고 있다. ‘희중’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부끄러움의 실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한참 동안 순천만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덮였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순천만의 모습을 지금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나는 과연 순천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내가 돌아다니는 여행지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제대로 된 진실일까. 가슴이 들끓었다. ‘희중’은 ‘인숙’에게 기울어진 것은 그가 ‘여행자’였고, 그 ‘여행자’였기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탓이었을까.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그렇더라도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는 즐겨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여행이 안겨주는 선물은 단단하고 융통성 없이 포박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신의 탈을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여행일 거다.      


 여전히 순천만은 도도히 자리 잡고 있었고, 내일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둘러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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