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요리의 발전
굵고 속이 꽉 찬 튼실한 무를 얻게 되는 날이면 어느새 네모난 깍둑썰기를 시작한다.
경쾌하게 무를 동강내고 이어 리드미컬하게 칼질을 한다. 또각또각 도마 소리에 따라 일정하게
다듬어진 사각 무늬가 만들어졌다. 쌩쌩해서 수분을 적당히 머금었을 때 조리해야지 놔두면 금방 마르고 시들해진다. 마트에 가도 이런 무를 살 수가 없으니 귀한 재료를 얻었을 때엔 지체할 수가 없다.
소고기 뭇국을 위해서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깍둑썰기를 했다.
채칼이 있다면 무생채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깍두기를 담기로 한다.
김치나 깍두기는 의래 장모님이 담아주셨으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심이 담기는지 잘 알지 못했다. 때로는 처치곤란 상태로 냉장고에 싸여서 더러는 버려지기도 했다. 귀한 줄 모르고 받아먹다가 이젠 손수 마련하지 않으면 조달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겁 없이 음식 만들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은 종종 조리법과 레시피를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그냥 그렇게
요리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게 겸손에서 나온 것인지 말 그대로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그 말투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깍둑무에 소금을 뿌리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액젓을 넣고 버무려서 하루쯤 밖에서 익히니 불그스름한 빛깔도 잘 배어 제법 집에서 맛보던 깍두기 맛이 났다.
음식을 만드는 김에 더울 때면 생각나는 오이미역 냉국에도 도전해 본다.
절인오이를 종종 썰고 자른 미역을 불려서 식초와 양념장을 곁들여 생수를 부었다.
화룡정점인 깨소금도 빠질 수 없다. 여름이면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누군가가 조리해줬던 그 음식을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성취감.
남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본 경험치가 싸여서인지 내가 만들어본 반찬에도 그 비슷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서당개 3년에 비로소 라면을 끓이는 격인가?
스스로 감격하며 이제는 어떤 요리나 반찬이라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마음이 들었다.
혼자 살아가면서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것인지!
아내에게 의존해서 스스로 식생활을 해결하지 못했던 사람이 맛본 발전이다.
콩나물과 두부를 구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식재료만 생기면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조리한다. 혼자일 때는 귀찮아서 그냥 때우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아들과 함께여서 조금 더 신경을 쓴다.
'전에도 지금만큼만 요리할 줄 알았다면 아내와 딸에게 정성 가득 담은 맛난 음식을 차려줄 수 있었을 것을'……
다음에 함께할 때에는 도마 위에 올려진 재료를 리드미컬하게 썰고 다지고 볶아서 때깔 좋고 풍미 깊은 요리를 선보일 생각이다.
음식은 더불어 함께 나누어 먹고 대화할 때 더욱 풍성한 것임으로……
서당개는 이제 라면을 넘어 코스 요리를 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