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계절에 감사하며
느닷없는 계엄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길어지던 겨울, 불현듯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12월의 겨울은 추웠고 해가 바뀐 2025년의 새해엔 눈발이 유독 빈번했다.
만일, 군부대의 장갑차를 맨 몸으로 막아 선 시민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상관의 무모한 명령을 곱씹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 애쓴 군인들이 없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불행했던 역사가 현실로 재현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용기와 합리적 이성은 역사를 통한 각성과 민주주의적 염원 없인 불가능했다.
순리가 편만해야 하지만 무지와 편견이 퍼지는 순간 역행과 퇴행이 스멀거린다는 것을 인지한다.
길바닥을 얼어붙게 하는 매서운 폭풍한설에도 아랑곳지 않고 은박을 몸에 둘러싼 키세스의
사람 꽃을 만나지 않았다면 봄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려 손에 손을 맞잡고 촛불로 밤을 비춘 거리의 외침이 끊겼다면 새 봄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게다. 백 여 일을 넘긴 시간은 새로운 해로 넘어가는 시점이며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을 바꾼 시간이었다. 봄을 따스하게 맞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단보다 더 이단 같은 이단아들의 거짓된 예언이 공허한 울림으로 퍼지고, 기득권 안에 숨은 자들이 무책임하게 흥분을 부축이고, 주홍글씨로 빨간 칠을 덧 씌우면 백주의 테러도 용납될 수 있다는 무도한 무모함에 몸서리쳤다.
국가가 어려울 때면 떨쳐 일어났던 동학 농민의 함성이 트랙터가 되어 남태령을 넘어설 때
시민들이 합세했고,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는 소망을 가졌다.
거리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은 선결제를 통해 음료와 빵을 제공했으며, 대신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며 응원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국가의 품격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을 때, 가정 여린 듯해 보이는
글과 문학이 세상의 지성을 일깨우며 은은한 고귀함을 퍼트려주었다.
민주주의의 법을 신뢰함으로 최후의 보루인 재판관들의 입에 집중하며 인내의 한계치를 견뎌냈을 때,
지혜롭고 합리적인 선명한 판결이 큰 시름을 덜어주었다.
혹시나 하는 우려는 보편적 지성을 의심하는 기우였다는 것을. 좌우의 시선을 넘어 상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했다.
어른 김장하의 작은 나비짓이 청빈한 재판관의 정직한 울림으로 이어졌고 그 집단 지성이 사회를 밝혀 정의가 메아리치게 했다.
봄은 그냥 우리에게로 다가온 것이 아니다.
매서운 추위와 혹독한 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싹 터나왔다.
따라지가 알곡인 양 정통이 사이비 같은 혼돈의 시간을 살면서, 퇴행할지언정
역사는 굽이쳐 발전하면서 우리를 깨우쳐갈 것이다.
피기 시작한 봄꽃의 향연이 우리의 후진적인 정치제도와 교육시스템까지를 일깨워
세계가 닮고 싶어 하는 k 코리아로 만개할 수 있기를 ……
세상의 외풍은 더 드세어지니 내실 있는 봄의 정원을 잘 가꾸어 갈 수 있기를......
깨어 있는 시민들이 당겨 온 봄이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