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많이 보았던 인상인데 말투는 나직하니 물 흐르듯 굴러가는 발음이다. 러시아어의 리듬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동양인이 서양 언어의 톤으로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인상이 익숙함은 역사 이래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니 교류가 왕성했을 것이고, 애석하게는 대몽 항쟁의 아픈 시기와 볼모로 잡혀가던 과거가 있었으니 바로 이해되었다.
광활한 벌판 위에 철제 조형물로 우뚝 세워진 칭기즈칸의 조형물을 우러러 바라보게 만들어 놓은 것만 봐도 그의 위세가 한때는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우리 촬영팀의 안내와 통역을 맡은 00은 칭기즈칸이 유럽과 아시아를 호령하던 때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00은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친구였다. 약간의 낯선 인토네이션을 빼고는 외형과 말투가 그냥 한국사람이다. ‘좋아서 시작한 언어가 저렇게 직업으로 이어지기도 하는구나’ 놀랍고 신기한 기분으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몽골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몇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이고, 이동이 용이한 숙소인 게르에 있었다.
주된 전투 식량으로 육포를 사용했으니 소지하는 것이 쉬웠고 거기에 더해진 용맹성을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키 큰 말과 몽골 토종의 말은 많이 달랐다.
키가 좀 작고 다리가 뭉뚝하게 두툼한 몽골의 말은 먹을 것만 잘 주면 하루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그렇게 오래 달리지 못한단다. 그런 강인함으로 몽골을 가로질서 동으로는 한반도의 남단을 거쳐 제주에 까지 그 힘을 미쳤으니 유럽의 일부를 평정하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 나는 사치를 싫어하고 절제를 존중하오. 나와 나의 부하들은 같은 원칙을 지니고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소.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칭기즈칸 -
8월의 몽골은 천지 사방이 푸르름으로 뒤 덮였다.
“나담 축제”는 끝났지만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씨름과 말타기 활쏘기 등을 연마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소형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도시 외곽의 대평원 지역을 가로질렀다. 특별한 아스팔트 포장이 없는 황톳길을 달렸다. 사방이 평평한 녹초지여서 어디로 향하든 길이 가능한 오프로드였다. 길 양 옆으로 전신주가 달려 있기에 이 길이 메인 도로라는 것을 표시해 주는 것 같았다.
도심에는 각종 차량들로 뒤엉켜 있는데 단연 압권은 4륜 구동의 SUV 차량이다. 서로 먼저 고개를 디밀고 진입하려고 다툼을 벌이며 운전을 하는 모습이 마치 말을 몰고 선두 경쟁을 벌이는 것 같은 아찔함을 연출한다.
아직 성숙한 운전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겠고 과거 십여 년 전의 우리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어 실소를 금치 못한다. 큰 차가 우선이고 먼저 고개를 들이민 놈이 우선이었다.
4월을 봄이라 착각하고 몽골을 방문했을 땐 매서운 추워에 머리가 얼어버릴 지경이었다.
도심의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본 울란바타르 시내는 그야말로 석탄의 연기가 상층부를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띠를 볼 수 있었다. 매캐한 석탄 내움이 사방에 진동했고 눈과 목이 따가웠다.
겨울은 그야말로 시베리야 북풍한설이 바로 내려오는 극한의 추위라고 했다. 4월에도 우리의 한겨울 영하의 추위가 이어졌으니 그때는 내내 떨면서 촬영에 임했다. 그렇게 절반의 계절이 눈으로 둘러싸인 겨울을 보내게 되니 초록이 돋아나는 계절에 축제로 즐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몽골에서 함께했던 스텝들
코이카와 함께 두 차례에 걸쳐 몽골을 방문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한겨울의 추위를 녹여줄 난방과 온수 시스템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촬영키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막화 방지를 위한 조림사업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광해 자원 개발 후 폐광이 된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와 태양광발전지역의 촬영도 진행했지만, 물이 부족한 사막화 지역에서 메말라가는 호수의 수량을 유지시키며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작업은 상당한 고난도의 노력이 뒤따르는 프로젝트였다.
식재된 어린 묘목에 물을 공급하는 배수 관을 하나씩 연결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만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황사를 막아내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성공해내야만 하는 사명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나무가 물을 머금고 있어야 호수도 메말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호수에 물이 있어야 주변의 가축과 동물들이 물을 얻을 수 있다.
말과 염소와 소를 모는 목동들이 호수가 주변으로 가축을 몰고 모여들었다.
동물들은 가급적 많은 물을 몸으로 받아들이려고 물가에 닿기 전에 몸의 모든 배설물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호숫가 주변이 각종 배설물이 쌓이고 썩어서 누런 악취를 풍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시내에 머물 때에는 번듯한 호텔에서 묵었고, 몽골의 국립공원을 가로지를 때에는 대평원의 게르에서 밤을 보냈다. 사위가 칠흑인 밤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별이 매혹적이다.
게르 안에서 피운 장작도 운치 있지만 천막 안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
틈을 내어 몽골의 전통 말을 타보는 경험을 해보지만, 떨어지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느라 멋지게 달려보지를 못한다.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동행하던 초등학생 현지인 꼬마가 바람처럼 가르며 말을 타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나면서부터 말을 탄다는 현지인의 말 타는 실력은 한마디로 말과의 혼연일체다.
말은 그렇게 마음껏 타고 달리지는 못했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록의 지평선을 원 없이 달리며 넓은 대평원의 자유를 만끽했다. 끼니 때면 흔한 게 고기인지 육식을 위주로 먹었다.
울란바타르 시내
도심으로 다시 돌아와 호텔에 안장을 풀었다.
외관은 중급 호텔로 나쁘진 않아 보였지만 코이카 직원들은 우리보다는 더 높은 급의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어둡고 으쓱해서 걷는 게 두려웠다. 밤에는 더욱 차량으로만 이동해야지 도보로 다녔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 것만 같았다. 우리가 묵을 때 한국의 방송팀도 연예인을 데려와 체크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일행은 각각의 독립된 공간으로 배치되어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밤을 맞았다.
깊은 잠에 빠져들 즈음 외마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었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호텔의 주변에 울란바타르에서도 유명한 클럽이 있어서 대략 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엔 2차로 찾아드는 다음 장소라는 것. 호텔 치고는 방음 시설이 너무도 열악하다는 것.
나는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웠다.
낮에 광야를 누비며 박차고 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벽과 천장을 타고 울리며 나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