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의 ODA 지원 현장. 3 (2012년 4월)
인도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스위트룸에 묵었다.
스리랑카에서도 가장 붐비는 도시인 콜롬보 시내의 전망 좋은 바닷가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는 긴 비행과 스리랑카의 더위에 지쳐 호텔에서 여독을 풀 계획이었다. 코이카에서 예약한 부킹은 늘 순조로웠기 때문에 담당 직원에게는 예약 서류만 전달받았다.
호텔로 가서 체크인하려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방 4개가 이미 꽉 찼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없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간단히 씻고 저녁을 먹으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난생처음 와본 나라에서 맞닥트린 황당함에 약간의 오기가 솟아올랐다. 예약에 문제가 생긴 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물었고, 방을 대체해서 주던지 다른 호텔의 룸을 알아봐 달라고 따졌다. 그간의 정황으로 봐서 코이카 쪽이 실수했을 리는 없다는 확신에서였다. 강하게 요구했던 것은 우리 일행이 너무 지쳐서 누군가는 나서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4월의 성수기에 호텔이 오버부킹을 했던 것이라 확신했다. 한동안의 기다림과 대화 끝에 호텔 측은 우리에게 스위트룸을 내주겠다며 방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뜬금없이 호텔 스위트룸을 배정받은 우리(촬영팀 3명과 사진가 1명)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급진 넓은 공간의 이방 저 방을 오가며 내부를 감상했다. 출입문은 하나인데 넓은 거실과 여러 개의 방으로 꾸며진 구조였다. 심히 곤하고 허기진 상태라 바깥 식당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항상 제작비용을 고려해서 소비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만은 룸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가격은 괘념치 말고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고르기로 했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산물은 필수, 스테이크, 스파게티, 야채와 과일, 맥주 등을 주문했다. 호기롭고 맛있게 먹자고 큰 맘먹었다.
와!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다. 룸 서비스로 차려진 음식이 보기도 좋고 맛도 훌륭했다. 쇠라도 씹어먹을 허기에 성찬이 차려졌으니 돈 걱정일랑은 나중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찍어대느라 야단이다. 나중엔 데이터 관리가 안돼서 다 날려버리기 일쑤지만 사진가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평생 몇 번 있을까 하는 호사를 증명할 길이 없을 뻔했다.
그렇게 맛나게 배불리 먹었는데도 계산서에 기록된 비용은 예상치를 훨씬 밑돌아, 다시 한번 놀랐다.
‘한국의 물가가 비싼 건지 이곳의 물가가 착한 건지’
스리랑카는 고산지대에서 생산하는 홍차로 유명한 실론티의 나라다. 영국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티를 경작시켰던 것이다. 나 역시 실론티를 즐겨 마시면서도 그 원산지가 이 스리랑카임을 이 나라에 와서야 알았다. 남한의 2/3 크기에 인도 대륙과는 떨어져 있는 섬나라로 ‘인도의 눈물’ 이란 별칭이 있다. 스리랑카는 불교와 힌두교, 인종과 종족, 유럽의 오랜 침략 등, 오랜 내전과 외침이 반복되어 온 나라다. 2000년대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쓰나미의 피해로 기상예보의 정확성이 어느 때 보다 중요했고, 적도 부근의 풍부한 태양에너지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었다. 코이카는 이곳에 축구장 규모의 태양에너지 시설과 천리안 위성의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을 전수하고 세팅해준 것이었다.
코이카는 시내에 위치한 기상청 안마당에는 커다란 위성접시 안테나를 세웠고 슈퍼 컴퓨터를 지원해서 기술이전을 돕고 있었다. 해일의 급습으로 불시에 가옥과 생명의 피해를 입었던 남쪽 바닷가 함반타토 지역엔 일본이 지어준 것보다 더 넓은 범위의 태양광 단지를 조성했다. 기상정보의 경우 스리랑카는 일본에서 보내준 위성 정보를 통해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다. 한국 천리안 위성으로 바꾸면서 좀 더 세밀하고 디테일한 영상 데이터를 수신받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 우리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스리랑카는 여전히 우리의 데이터를 수신받고 있을까?”
2012년의 취재이니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구촌엔 점점 기상이변이 잦고 날씨 예측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우리 기상청의 예보를 신뢰하지만 어떨 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미국의 Peace Corps이나, 한국의 KOICA, 일본의 JICA, 유럽의 다양한 봉사 단체들도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 등을 많이 돕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인류애를 기반으로 어려운 나라면 아무 나라나 헌신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얘기는 아니다. 향후 자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기 위한 의도를 전제로 한 선함이랄까?
종교적 신념과 신앙에 기반한 단체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인터뷰 진행 중
아무튼, 사진가의 기록으로 몇 장의 스틸 속에 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현장에서 연출하고 영상을 제작할 때면 나는 늘 피사체를 담는 사람이지 담기는 역할이 아니라 남겨지는 자료가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데이터를 잘
보관하지 못하는 부주의를 범한다.
수시로 비가 내린다. 장마가 예상보다 길다.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온통 새파랐게 펼쳐졌던 실론의 나라를 떠올렸다.
오늘만은 커피가 아닌 홍차를 내려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