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좋은 소식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안 좋은 소식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 중차대한 소식을 어떻게 가볍게 전화로 전한단 말인지.
알릴 방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어머니와 남편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엄마, 우리 셋째 생겼대!"
내심 어머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우리가 채 감당치 못한 이 혼란스러움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주실 것 같다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어머님의 반응은 차가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는 모르겠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대충 이런 말씀이셨다.
차라리 듣지를 말 걸. 무거운 마음에 돌 하나를 더 얹은 것 같았다. 성능 좋은 남편의 스마트폰 스피커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님을 원망할 순 없었다.
이제 첫째가 9살, 둘째가 7살이었다. 4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4년간 육아시간을 쓰고 있지만 어머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지 않았다면 육아도 일도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복직하면서는 아이들 등, 하원을 오롯이 맡아 주셨다. 등, 하원뿐인가. 아이가 아파서 기관에 못 가면 어머님이 돌봐주셨고,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부터는 숙제도 봐주셨다. 게다가 어머님은 무슨 일을 하든 대충 하는 법이 없으신 분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어머님은 힘에 지나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계셨다.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자라 손이 덜 가니 어머님도 조금 자유를 꿈꾸시는 듯했다. 나도 이제는 덜 죄송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님의 꿈에 찬물을 끼얹었으니.
내일 어떻게 아버님, 어머님을 뵙지?
설날이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날이었던가.
오늘 밤은 잠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 긴긴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