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ve Jul 24. 2024

검情

흑백사진

내 인생은 컬러사진보단 흑백사진에 가까운 것 같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컬러사진들에 밀려 주목을 받기도 어렵고 세상을 표현하기에도 색들이 부족해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다채로운 감정의 교류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바라보는 일도 많다. 감정은 색처럼 깊게 들어갈수록 종류가 수도 없이 많아진다. 물론 검정에도 많은 감정이 있지만 무지개처럼 빛나는 색들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 나에게 흑백은 또 다른 정신병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검정이라는 병은 컬러들에는 당연한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들의 대화에 물들 수가 없다. 조화롭지 못한 검정은 결국 다른 컬러들을 내쫓으며 자기만의 세상만 더 크게 만들어간다. 이게 바로 “검정”이라는 병이다.


결코 컬러가 될 생각은 없다. 아무리 희석한다 한들 농도만 옅어질 뿐 오색빛깔이 될 수는 없으니까. 빠른 인정과 타협은 흑백에 불가결한 요소이며 현실을 자각하기에 쉽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존재할 흑백들이 검정이란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슬퍼할 이유도 아파야 할 이유도 없다. 약을 먹을 필요도 없으며 숨기며 살아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컬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순수”이다. 다채롭지 못하기에 꾸밈이 없어 순수한 관점으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진으로 예를 들면 많은 사진의 기법 중 흑백으로 표현되는 사진들을 보면 피사체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가고 순수하게 바라본 구도가 사진을 보는 이들은 흑백이 주는 명료도가 상승한다.


컬러들의 색에 물들지는 못하겠지만 나, 너, 우리는 흑백으로서 살아가는데 물의 희석으로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려나가면 되고 조화롭지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세상을 칠해가면 된다. 검정이라는 순수한 감정 그대로.


이 세상의 흑백들에게,

흑백이.

이전 17화 무릉에 산다던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