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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ve Jul 26. 2024

못 자도 괜찮아, 낭만적이잖아.

아마 나는 그 날,

한 줄기로 떨어지는 에스프레소 폭포에 빠져 열심히 허우적거리다 겨우 나와 몸을 털어내고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려다 창문 밖에 펼쳐지는 파도에 정신없이 휩쓸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로 했다. “나 퇴근했는데 바다 보러 갈래?” 핑크빛 노을에 걸림이 없어 찬란하게 펼쳐진 하늘 아래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비릿한 바닷바람이 살 끝을 스치는 순간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가 원하는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성산을 지나 목적지 없이 그저 핑크빛 노을에 칠해진 바다를 두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포구 앞 작은 밥집에 들렀다. 자극적이지 않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월정리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져버린 노을 대신 유독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등지고 서로의 오늘을 공유했다. 낭만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무엇으로 울고 웃었는지, 오늘의 탐닉은 만족스러웠는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오늘을 흘려보냈다.


달빛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며 시간이 흘러가도록 우리의 대화는 끝날 기미가 없었고 사라진 색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끈적거리는 바닷바람을 씻어낸 뒤 작은 침대에 누워 우리는 다 하지 못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는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고 불그스름한 하트 모양의 꽃이 자랐다. 어느 들판의 핀 꽃 중에서도 가장 진한 색을 띤 대화의 꽃은 살랑거리는 바람 따라 퍼져나가 수평선 너머에 붉은 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잠길 듯 말 듯 한눈꺼풀을 수다로 겨우 잡고 밤을 새웠다. 많은 해를 재웠고 많은 달을 깨웠지만 오늘 나의 자장가는 그 어느 순간보다 낭만적으로 들렸길 바란다. 이왕 뜬 눈으로 보낸 밤을 보내기에 아까워 우리는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한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바닷가에 도착해 둘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돗자리를 펼쳐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낭만으로 보낸 하루, 어찌 좋은 생각들로 가득했는지 그날의 해와 달과 바람과 바다는 잊을 수가 없다. 낭만적인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한 못 지킬 약속이 그립다. 아마 나는 그날, 저 먼바다에 오늘을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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