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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Nov 18. 2024

영감의 자리에 앉아보실래요?

2. The glory of being alone

"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대학원을 다닐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는 내가 취업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나이 먹도록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학비를 주면서 엄마가 나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다섯의 아이를 낳고 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늦둥이를 낳은 걸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했다. 대학을 다닐 때는 학비를 벌려고 학보사 생활을 그만두고 학원강사로 일했다. 대학생 때도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게 늘 미안했다.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매번 얼굴이 붉어지는 일을 당했다. 돈은 늘 뿌려지거나 가차 없이 집어던져졌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는, 다 줘도 아깝지 않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멋대로 읽었다.

나는 엄마가 되면, 절대로 엄마처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식을 낳았고,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번 귀한 줄 모르고 아이는 욕망이 더 커졌다. 돈이 필요할 때만 엄마~라고 부르는 딸을 보니 부아가 끊었다. 나도 엄마처럼 인색해지고 계산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없을까? 미술관에 와서 앉았다.   

 heart chair 신우철


단단한 강철을 실크처럼 부드럽게 구부려 만든 하트체어.

단단한 무쇠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건 <불>

전혀 다른 성질의 나를 만드는 건 불같은 시련만이 가능한 게 아닐까?

못나고 철부지 못된 아이가 <잉태>와 <양육>이라는 고난을 거쳐

<엄마>라는 전혀 다른 물성의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계속 변하고 있다.

나의 강철 같던 마음을 리본으로 꼭 묶어본다.  

tooth chair 최동욱

무척 불편해 보이는 의자였는데 의외로 앉아보니 굉장히 편안했다. 그 편안함은 단단하고 안정적인 균형감에서 왔다. 오래간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래 앉아있었다.

계속 유지하려면, 단단하게 뿌리밖고 서있을 수 있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가족, 사랑, 돈 어느 것 하나에 집착하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늘을 향해 쑥쑥 뻗은 나무들은 바람길이 있다. 나도 숨길을 터 본다.

숨을 쉬어본다. 478 호흡. 4초들 이마시고 7초 참고 8초 동안 천천히 내뱉었다. 바람으로 가득 찼다.

immersion series 이예찬

나무를 돌처럼 반질반질하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문지르고 다듬었을까?

나는 딸에서 엄마로 아내로 되기 위해 얼마나 나를 깎아냈을까?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와는 다른 존재다.

'나는 나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나를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저 풍파를 지난 돌 같은 나무가 더없이 아름답다. 그냥 나무인 채로 살아내도 되지만 누군가를 앉히기 위해선 갈고닦아내야 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나로 살기를 포기해야 부모가 된다.  그래, 좀 내려놓자.

모체 2 김영광

결국은 모체. 이 이상하고 성기 같은 의자에 앉아보니 비로소 뭔지 알겠다. 엄마의 자궁 안에 들어간 것처럼 어쩌면 나는 원래의 자리로 들어왔다. 갈고닦고 나를 버리고 어머니인척 아내인척 했지만 그냥 모든 걸 차단한 채로 모채 속으로 파고들자 한없이 좋았다. 세상의 소리도 잠잠해지고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도 가려준다.

이대로 잠이 들어도 좋겠다. 참 좋다. 엄마라는 존재는.  


당신은 어느 자리에 앉아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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