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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24. 2024

사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겉보기엔 다르지만, 사실 다 같은 마음이었음을 깨달을 때 갈등은 해소된다

부부 싸움은 왜 일어나는 걸까?

1년 넘게 연애하면서 사계절을 보내면서도 싸울 일이 없었던 사랑하던 남녀가

마침내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사실 부부끼리는 싸울 일이 거의 없다.

가끔 농담을 주고받으면 싸우는 척 해보거나, 티격태격할 수는 있겠지만, 싸우지는 않는다.

때론 너무 피곤하여 상대방의 장난을 받아줄 힘이 없어서 각자 휴식 시간을 가지긴 하지만,

회복되면 금방 깨가 쏟아지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부부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럼 계속 싸우는 우리 부부는 도대체 뭐냐고? 잘 생각해보시라.

연애 때는 분명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결혼하고 특정 시점까지는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 싸움이 잦아진 특정 포인트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대부분 '아이가 생겼을 때'다.

아이러니하다. 부부 간의 깊은 사랑의 결실로 생명체가 잉태되었는데, 그때부터 부부 싸움이 시작된다.

말다툼도 잦아지고, 돈 문제로 싸우고, 애를 누가 키울 것인지,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놓고 싸운다.

심하면 아이 키우는 문제가 집안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작은 평수의 월세에서 부부 끼리 알콩달콩 사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했는데,

이제 이사를 가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작디 작은 월세에서 아이와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우리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키우기는 싫다는 생각이 든다.

금전적으로 좀 무리해서라도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또 부부 싸움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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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돈이 어디있느냐, 여기서 조금 더 살자.

B: 아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동네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한다.

A: 그 돈 누가 벌꺼냐, 감당할 수 있냐!

B: 같이 벌면 된다. 일단 이사 가서 살다보면, 다 해결방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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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없는 싸움이다. 마음이 상한 누군가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면, 그때부터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된다.

부부 간에 말이 없어지고, 슬슬 각방을 쓰기 시작한다.

아내는 배가 점점 불러오는데, 남편이 냉랭해지는 화가 나고,

남편은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아내에게 화가 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이다.

아이 앞에서 부부가 계속 싸우고, 아이가 들어서는 안 되는 말도 막 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잘못된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를 보면서 같이 해결책을 모색해보자.

미국 동부에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둘 다 변호사이고, 둘 다 돈을 잘 번다.

최근 아내가 임신을 했다. 싸움이라고는 없던 이 부부는 아이가 생긴 후, 거주지 문제로 다투고 있다.

부부 끼리만 살때는 전혀 문제없고, 서로 아껴주고 다독여주던 부부였는데,

아이가 생기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서 살 것인지였다.

아내는 프랑스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편은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두 변호사 부부는 데이터 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변호사답게 한 판 붙은 것이다.

아내는 프랑스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 변호사 수임료가 얼마나 높은지,

아동 행복지수가 얼마나 높은지 등을 조사하여 남편을 공격한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남편은 미국 동부에 좋은 대학이 얼마나 좋은지, 미국의 물가가 프랑스보다 얼마나 저렴한지,

미국에 좋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등을 조사하여 아내를 공격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어떤가? 누가 이긴 것 같은가? 글쎄. 이 데이터 싸움의 승자는 없다.

이런 데이터 싸움으로는 의견을 절대 좁힐 수 없고,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럼 적절한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면 되지 않겠냐고?

좋은 생각이다. 미국 동부와 프랑스의 적절한 중간 지점이 대서양 바다 한 가운데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런 문제는 중간 타협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미국아니면, 프랑스로 가야 끝나는 문제다.

그리고 데이터 싸움은 정답이 아니다.

아내는 프랑스가 좋은 이유만 계속 찾고, 보고, 듣게 될 것이고,

남편은 미국이 좋은 이유만 계속 찾고, 보고, 듣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심리학적 현상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아니던가.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심리적 성향 말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낀다고 풀어 설명할 수도 있겠다.

이런게 확증 편향이다.


*확증편향

: 이미 정립된 개인의 견해, 태도, 주장에 부합하는 자료들만 선택적으로 살펴보면서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해가는 심리적 경향


아이를 위해 좋은 거주지로 이사를 갈지 아닐지의 문제로 다투는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대출금 감당 못한다. 무리하면 안 된다. 여기서 계속 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무리한) 대출을 했다가 파산하는 사람들 데이터만 수집하여

파트너를 몰아붙이려고 할 것이다.

'다 방법이 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부자된 사람 많고, 아이도 잘 키운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부부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식도 잘 키운 데이터를 수집하여

파트너를 몰아붙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데이터는 옳고, 상대방의 데이터는 그르다고 생각하면서 싸움을 반복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상대방은 바보라고, 세상을 모른다고,

데이터가 이렇게 명확한데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방법을 쓸 때가 되었다. 이런 데이터 싸움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남편과 아내 모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고,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만약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자고 하는 측이 아내라면, 자식을 잘 키우고 싶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식과 남편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임을 남편이 인정해야 한다.

또한 여기서 더 살자고 주장하는 측이 남편이라고, 그 마음도 가정을 지키고 싶고,

자녀가 태어난 후, 들어갈 돈이 많아질 때를 대비해 현금을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임을 아내가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각자의 주장은 다르지만, 그 주장의 배경이 되는 근본적인 마음은 동일함을 인정해야

서로에 대한 존중도 나오고, 양보도 나오고, 타협도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조금씩 양보하여 제3의 대안인 적당한 동네를 찾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부부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 안에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마음은 동일함을

가정을 지키고 싶고, 자녀를 더 좋은 곳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임을 서로 이해하고, 알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부 간의 협력과 상호 존중이 회복되고, 제3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안에서 프랑스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곳을 찾거나,

미국 동부와 비교적 가까운 캐나다를 제3의 대안으로 삼는 것과 같은 적당한 방법 말이다.


서로 다른 주장과 그 주장을 대변하는 데이터에 매몰되지 말자.

이건 갈등을 부추기고, 싸움을 조장하며, 혐오와 폭력을 낳을 뿐이다.

서로 다른 주장에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공통점,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갈등은 이렇게 해소하는 것이고, 이렇게 찾은 해결책이야 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참고문헌

Nickerson, R. S. (1998).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in many guise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2), 175-220.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Candice Pi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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