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강경파와 역차별에 주는 교훈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이라는 영화가 있다.
예루살렘을 놓고 벌어진 십자군과 이슬람 진영 간의 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역사에 기초한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감독의 상상력이 반영되었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군과 이슬람이 뭔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십자군의 왕, 즉 예루살렘 왕이 예루살렘에서 포용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시절에는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을 시행할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왕(십자군 왕)의 통치하에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고, 상업의 자유도 보장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노력한 만큼 돈을 벌고, 노력한 만큼 지위가 상승하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또한 얼마든지 황무지를 개간하여 자기 땅을 만들 수 있고,
자기 힘으로 우물을 파면,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을 십자군 왕이 보장해주고 있는데,
어떤 백생들이 불만을 품겠는가.
이렇게 백성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왕이 통치하는 예루살렘을 이슬람이 힘으로 정복해봤자,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힘으로 잠깐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항상 문제는 포용력이 없는 지도자가 등장하면서부터 발생한다.
포용력이 없는 강경한 입장, 극단적인 입장의 지도자가 왕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혜롭고, 총명하며, 포용력 높은 정치로 존경받던
예루살렘의 제7대 국왕 보두앵 4세(Baudouin IV)가 문둥병의 악화로 죽고,
제8대 국왕에 올랐던 보두앵 5세(Baudouin V)도 문둥병으로 죽자(영화에서는 안락사 시킨 것으로 나옴),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이었던 강경파, 기 드 뤼지냥(Guy de Lusignan)이 제9대 국왕에 즉위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종교적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오직 기독교만 정통 종교로 인정하면서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게 되고,
상업의 자유나, 소유의 자유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만 국한하여 인정함으로써
기회의 땅 예루살렘은 한계의 땅, 제한의 땅, 통제의 땅, 공포의 땅으로 변한다.
심지어 이슬람의 왕 살라딘의 누이가 있는 마을에 쳐들어가 이슬람인들을 죽이고,
살라딘 왕의 누이마저 죽이며, 이를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이슬람의 외교 사절을 죽여버린다.
예루살렘 왕이 백성들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포용력을 잃어버리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살라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복수라는 명분도 생겼고, 예루살렘 백성들이 폭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명분도 생겼다.
자신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다시 포용력 높은 정책을 펼친다면,
백생들은 어느새 자신과 이슬람을 지지할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다.
첫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 기 드 뤼지냥은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많은 군대가 죽고, 다치고, 포로가 된다.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것도 있지만, 이미 민심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에는 군대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 있던 예루살렘 군대가 끝까지 저항하여 이슬람에 타격을 주지만, 결국 항복을 하고, 성을 내어준다.
이런 것이 역사가 정치가들에게 주는 교훈이자, 리더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포용하고, 끌어안고, 자유를 보장하고, 기회를 보장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평화를 보장하고, 백성을 지켜주면, 백성도 살고, 그런 멋진 정치를 하는 정치가와 리더도 산다.
하지만 자꾸 치우치고, 강경한 모습을 보이며, 포용하지 못하고, 기회를 박탈하면,
백성도 힘들지만(때론 죽지만), 그런 정치를 하는 정치가와 리더도 죽는다.
기독교에게만 자유를 주고, 이슬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예루살렘이 결국 망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의 자유를 지켜주겠다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회를 지켜주겠다고, 다른 누군가의 기회는 제한하면 그건 역차별이다.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뭉개면 그건 역차별이다.
이런 역차별적 탄압을 마치 뭔가 대단한 정책을 하는 것 마냥 이야기하는 정치도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자유와 기회와 권리를 제한하는 강경하고 포용력 없는 정치는 결국 설자리를 잃는다.
역사는 반복 된다.
*참고문헌
Haidt, J. (2012).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Vintage.
*표지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