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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27. 2024

집착을 버려야 열리는 새로운 세상

성공의 열쇠로서의 집착 버리기

집착(執: 잡을 집, 着: 붙을 착).

집착의 한자 어원을 해석하자면,

뭔가를 꽉 잡고 놓지 않거나, 딱 붙여놓고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는 집착에 대한 심리학적인 정의가 나타나 있는데,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것 하나에 완전히 매몰되어서 매몰되어 버린 그 한 가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신경쓰지 않는 상태라는 뜻이리라.

혹시 지금 '강박 장애'라는 정신의학적 용어가 생각났다면, 정확하다.

집착은 강박 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다.

인생을 걸음을 적당한 스피드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건강할 것인데,

수능 시험 준비만 3년 째, 공무원 시험 준비만 5년 째 하고 있다면, 그건 집착이고,

강박일 가능성이 높다.

그 집착을 버리면, 더 큰 세계가 열리고, 더 많은 가능성이 보이고, 더 많은 기회가 보일텐데,

그것 하나에 집착하는 중에 더 큰 세계가 날라가 버리고,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그에게서 멀어진다.

수능 잘봐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래서 그것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없다고,

인생에서 수능 잘봐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 대한 집착은 부모님들이 더 문제일 때가 많다.

부모가 집착하니, 그 분들의 자녀들도 시험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혹시 제 말을 듣고 있는 부모님들 중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다면,

자녀들을 편안하게 놓아주시기 바란다. 그런 시험과 대학 입시 같은 것이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씨를 보라. 전문대학도 떨어졌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사람 인생이 지금 그때의 수준인가? 아니다. 잘 나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있다.

백종원씨를 보라. 잇단 사업 실패로 빚이 70억을 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때 수준인가? 아니다. 역시 잘 나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있다.

이들의 성공에는 여러가지 원인과 노력이 작용했겠지만,

나는 오늘 이 분들이 집착을 버리는 순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학에 집착할 때 김창옥씨는 점점 성공과 멀어져갔다.

그런데 힘을 좀 빼고, 인생을 다시 보고, 그 후에 성악을 전공했지만, 성악 자체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다른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고, 그 길에서 성공했다.

외식 산업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하면서 앞서 가는 요리에 집착했을 때는 성공하지 못했던 백종원씨가

그 집착을 버리고 대중들의 코드에 부합하는 포차를 열었을 때 그는 성공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렇다. 내가 경제학에 집착했다면, 지금의 이국희는 없다.

경제학에 집착하지 않고, 심리학의 가능성에 발을 들려놓았기에 새로운 길이 열렸고,

지금의 이국희가 있게 되었다.


그럼 왜 집착할 때는 꽉 막혀 있던 성공의 길이, 집착을 버리는 순간 활짝 열리게 되었을까?

나는 집착할 때와 집착을 버릴 때 사이에 나타나는 몇 가지 인지심리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 집착할 때는 힘이 들어간다. 경직된다. 힘이 들어가면 될 일도 안 된다. 이건 내 자신이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강의가 힘이 들어가면, 조급해지고, 목소리만 커지고, 듣는 학생들 반응도 좋지 않다.

교수 생활 초창기에 그랬었다. 강의를 잘하고 싶은 조급증과 집착이

계속 강의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유연하지 못했고, 여유있게 질문에 답해주지 못했다. 강의 하면서 미소를 짓지 못했다.

학생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매일 혼나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착을 버렸다. 열심히 준비를 안 했다는 뜻이 아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힘을 좀 빼고 가르쳤다. 부드럽게, 천천히, 웃어가며, 미소 지으며 강의했다.

이렇게 하니까 웃는 학생들, 박수 치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강의 평가가 아주 좋아졌다.


둘째, 집착할 때는 말이 안 통한다. 확증편향의 끝판왕이 된다.

하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사장님들 중에 꼭 말이 안통하는 사장님들이 있다. 자기가 하던 방식이 최고이고,

자기가 하던 방식이 정답인데, 왜 자꾸 바꾸라고 하느냐고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그러니,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어볼 수 있게만 해주면, 자신은 성공한다고, 그러니까 그런 홍보만 도와달라고 한다.

자기가 최고고, 자기 얘기가 다 맞고, 남 이야기는 다 틀렸고,

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고, 내가 잘못 안게 아니고 사람들이 다 잘못 알고 있다.

그러니까 망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고집과 아집과 오만과 교만과 확증편향이 가게를 망하게 한 것인데,

못알아 듣는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그런 집착이 깨어진다.

남 이야기를 듣게 되고, 요즘에 잘 되는 가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게 되고,

자신의 행동, 자신이 해왔던 것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게가 다시 일어나고, 다시 성공하게 된다.


셋째, 집착할 때는 실용적인 생각을 못한다.

집착할 때는 자신에게 진짜 이득이 되는 생각이 무엇인지 계산하지 못한다.

정치가가 한 가지 가치관에 집착을 하고, 신념 혹은 정치적 이념에 집착을 하고, 한 가지 정책에 집착을 하면,

뭔가 진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계산을 못한다.

정치가가 누군가를 반대하고, 끌어 내리는 것에만 집착하면,

양쪽에 더 이익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더 유익한 방향이 무엇인지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가 누군가를 지키고, 공천권을 따내는 것에만 집착하면,

진짜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이 무엇인지,

진정 국민들의 생존과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국민에게도 유익한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과 정당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넷째, 집착할 때는 나만 보게 되고 공동체를 보지 못한다.

망하는 식당의 사장님들을 보면 꼭 자기 생각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검정색을 좋아한다고, 가게의 인테리어를 죄다 검은 색으로 하고, 조명도 어두컴컴하게 한다.

자신이 피규어를 좋아한다고, 곱창집에 피규어를 전시해둔다.

자기가 오토바이를 좋아한다고, 식당 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두어서 손님들의 진로를 방해한다.

자신이 아니라 손님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봐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선호에만 집착을 하다보니, 손님이 보이지 않고, 공동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집착을 내려놓고, 손님을 보면, 가게 인테리어와 조명을 환하게 바꾸게 된다.

가게 안이 잘 들여다 보이게 만들게 되고, 손님들에게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을 치우게 된다.

손님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신메뉴 개발을 하거나, 요리 연습을 하거나, 잘되는 가게를 공부한다.

청소라고 열심히 해서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주방의 동선을 다시 체크하여 더 효율적인 주방을 만든다.

메뉴판이라도 바꾸려고 하고, 손님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집착을 버리고 이렇게 할 때, 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가? 혹시 내가 뭔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자.

그 집착으로 인해 더 큰 기회, 가능성, 이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둘러보자.

집착을 버릴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참고문헌

Peterson, J. B. (2018). 12 rules for life: An antidote to chaos. Random House Canada.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Dynamic 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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