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고통: 외전(12)
버려진 제주의 밭마다 고통은 피어있다. 제주 4.3을 알기 전에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은 섬’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렸지만, 이제는 그 말이 아리게 다가온다. 4.3과 관련한 수많은 글들은 거센 바람이 가져온 고립과, 무수한 돌이 쥐어준 척박함, 그리고 오랜 시간 자행된 학살이 불러온 남성의 부재라는 새로운 시선을 주었고, 제주라는 섬을 관광의 도시가 아닌 기억의 섬으로 바꿔주었다. 그 시선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시선이 있다면, 현기영의 시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동료가 건넨 《순이 삼촌》에는 현기영의 중단편 작품들이 실려있었다. 그 글들은 대부분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눈이 가장 오래 머문 작품은 역시 〈순이 삼촌〉이었다.
이 작품은 자신의 고향 제주도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아오던 주인공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순이 삼촌’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주도에서 ‘삼촌’은 남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지인을 정겹게 이르는 말이었다. 순이 삼촌은 자신의 옴팡밭(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곳은 제주 4.3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묻혔던 밭이었다. 순이 삼촌은 당시 그 시체들 아래 있어서 겨우 목숨을 구했으나,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순이 삼촌의 죽음을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 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라고 적는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옴팡밭’과 ‘해묵은 죽음’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부유하던 말들이 이른 곳은 서이초 교사의 교실과 아린 죽음이었다. 순이 삼촌은 4.3의 시간을 지나며 어렵게 생명을 부지했으나 이후의 삶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지닌 가장 큰 트라우마는 생명(작물)을 기르던 자신의 옴팡밭이 죽음을 축적하는 ‘고통의 옴팡밭’으로 변질되는 참극을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리라. 자신의 밭에 층층이 쌓여가는 시체를 보면서 순이 삼촌의 삶은 이미 죽음에 이른 것이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 귀한 교사의 교실은 생명과 성장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온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품격을 상실한 일부 학부모의 악다구니와 교사의 고통을 방치하는 관료적 교직 문화 속에서, 교실에는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그 오래된 축적의 시간만큼이나 교사는 고통받았을 것이기에, 서이초 교사의 죽음 역시 순이 삼촌의 죽음과 같은 ‘해묵은 죽음’이다.
현기영은 《순이 삼촌》에 실은 수많은 단편 소설을 통해서 해방 이후를 살아냈던 약자들의 고통을 조명하고, 그 고통에 감추어진 힘들을 해부 한다. 나아가 그 고통을 다양한 인물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그렇게 현기영은 약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죽음을 반복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는 이토록 귀한 일들을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에 해냈으며, 모진 고문에도 이러한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과 마주한 교사들이 해야 할 일도 이와 같다. 우리는 애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애도를 넘어서 교실과 학교가 생명과 성장을 위한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문화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결국 마지막에 교사의 목을 조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준비되는 시간 동안 교사를 살리는 문화 역시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결국 제주 4.3의 고통을 드러낸 것은 법과 정부가 아니라 현기영의 시선과 기록이듯, 교사가 기댈 것은 법이 아니라 문화와 기록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