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악마는 홍대에서 치즈 케이크를 먹는다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작은 회사였다.

사장, 편집장, 사진기자 둘. 이렇게 원래 인원이었고,

나를 포함해 취재기자 둘, 그리고 사진기자 하나. 이렇게 나란히 입사했다.


일은 재미있었다.

떨림과 설렘, 기대가 늘 따라다녔다.

출근하면 맨 먼저 인터넷 뉴스와 연예란을 훑고, 가십을 추려 회의에 들어갔다.


어렵진 않았다. 단지 늘 흥미로만 보던 것들을 이제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다루는 게 이상했다. 이 모든 것들을 장난처럼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어색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뭔가 어른 흉내를 내는 기분이었던 것처럼, 취업을 하고도 마찬기자였다. 사회인이라는 감각이 와닿지 않고 아직 뭔가가 부족했다.

거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기대하던 월급날.

우리는 큰돈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작은 회사고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라서, 그냥 알바 시급 정도 정도만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강도도 견딜만했다. 이런 경험 자체가 ‘좋은 근무조건’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 하는 일 없어 보여도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장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편집장과 사진기자 둘도 별말 없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 세 여자, 우리 신입 기자들은 서로 눈만 굴리며 눈치만 보다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퇴근했다.


다음날.

사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뭐지?

우리는 여전히 월급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열정페이’란 말도 나오기 전이었다. 당시에 이런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장도 우리보다 고작 열 살쯤 많은 자그마한 여자였다. 오히려 그래서 더 대하기가 어려웠다. 충분히 품어줄 만큼 어른도 아니었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언니도 아니지 않은가.

퇴근길마다 우리는 어떻게 물어볼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답을 찾지 못했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은 없었지만, 첫 직장에서 부모님께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편집장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월급을 곧 주겠다고 한다. 당장은 사장이 자금 융통이 되지 않아 못 주게 되었단다.

첫 달이었고, 우리는 그냥 넘어갔다.

어색하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사장 생일이 되었다.

편집장이 사장이 좋아하는 홍대에 있는 특정 카페에 가서 특정 케이크를 사 와야 하니 돈을 모으라고 했다.

‘아직 월급도 못 받았는데…’

우리는 음식을 시키고, 공수해 온 케이크를 테이블에 세팅하고 초를 꽂고 노래도 불렀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사회생활인가?‘

사장은 웃으며 좋아했다.

사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창피했다.

내가 사장이라면 매일 출근해서 사장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래도 신기한 건 점심은 늘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직원들끼리 가까운 식당에 가거나, 대부분은 배달을 시켜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우리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들고 헷갈리게 하는 희망 고문 같은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날마다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비록 지하에 있긴 했지만, 출퇴근할 수 있는 게 좋았다. 평범한 모습으로 인파 속에 섞여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완전히 남달랐다.

방송사나 연예인 소속사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물론 연예인들도 직접 볼 수 있고,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까지 스케치한다는 명목으로 가까이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당시 영화 보는 것이 취미였는데, 이제는 영화취재기자로서 당당히 시사회에 참여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뿌듯했다. 물론 편집장이 허락하는 영화에 한하여서지만 말이다.


우리는 달마다 한 번씩 발행하는 월간지였다. 창간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매달 꾸준히 발행한 것보다 건너뛴 달이 많았다. 우리가 합류한 달에도 잡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고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류가 서서히 태동하던 때였고, 회사도 뭔가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은 대만 배급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다 같이 미팅도 식사도 하고 단체 사진까지 찍기도 했다.


다음 달에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장은 또 자리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곧 대만에서 잡지가 발행되어 가판대에 올리 가기만 하면 돈이 들어온다고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서로 사이가 가까워졌다 느껴지자 돈 이야기가 더 쉽게 나오는 듯했다.


그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입 기자 세명 중에 가장 회의적인 것은 나였다. 코스모스로 졸업한 만큼 나이가 한 살 더 많았기에 돈도 제일 궁했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이 좀 창피하다고 여기고 있던 터였다.

부모님께서 사회부 기자가 되라고 하셨지만, 이렇게 무명의 한류 잡지, 그것도 연예부 기자라니. 아니 여기까지는 사실 다 괜찮다.

가장 큰 문제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 정성 들여 쓴 내 글이 일본어, 대만어로 번역되어 나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친구들은 그럴 수 없었다. 사진 기자는 어쨌든 이 길로 가려면 경력,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다른 취재 기자는 졸업 후 공백이 생기는 게 싫고 창피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인내심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편집장에게 불려 가서 혼나고 있었는데, 묵묵히 듣고 있다가 대꾸하고 말았다.


“편집장님은, 제가 싫죠?”


여러분이 떠올리는 그대로가 맞다.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그렇게 선배에게 똑같이 말했다가 온갖 비난을 받고, 결국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어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었던 바로 그 장면과 정말 똑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편집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더욱 심하게 꾸짖은 건 당연했다.


후에 연예인의 일을 보며 아마 편집장도 나를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똑같은 말을 했던 당사자로서 그 입장에 대해 조금 변명하자면, 부당한 대우와 어려운 환경이지만 참고 견디며 밝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나에게 화를 내고 윽박지르니 나를 싫어한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정 결핍, 애착 장애마저 있는 탓에 상대의 눈치만을 보고 피해망상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까닭도 컸다.


세 달째 월급이 밀린 어느 날이었다.

편집장이 나만 살짝 불러냈다.

사실은, 처음부터 수습을 두 명을 뽑았는데 일하는 걸 보고 그중 한 명만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바로 나란다.

이번 달에는 알다시피 정말로 잡지를 찍어냈고, 이후부터는 우리 잡지가 술술 잘 풀려나갈 거란다. 지난번에 만난 적 있는 대만 측과 만나기 위해 다 같이 대만으로 출장을 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자랑스럽게 꺼냈다.


월급도 아직 손에 쥐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 제안을 내가 순순히 믿고, 기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우스웠다.

밀린 직원들 월급부터 당장 해결해주고 할 이야기가 아닐까. 월급도 없이 열심히 함께 일한 동기를 두고 차마 도의적으로 해서는 안될 이야기기도 했다.


나는 동기들에게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나보다 오히려 이 회사에 남아 일하고 싶어 했던 아이는 무척 분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어쩌면 내가 대신 조용히 그만두었으면 해결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사정도 모른 채 그 친구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계속 일하도록 남겨두는 꼴이었다. 우리는 함께 그만두었다.

사진 기자는 그냥 남기로 했다.


악마는 홍대 카페 치즈 케이크를 먹는다.



나도 열심히 일해보려고 했었다.

퇴근길에 틈나는 대로 대형 서점에 가서 잡지 코너를 샅샅이 훑어보면서 연구를 하기도 했다. 편집장이 아직 이 방면의 실무에 서툰 나에게 공부하라고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느 날 기자들이랑 회식을 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나를 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그랬겠는가.


이 일로 인해 나는 완전히 전향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진작 알아챘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었는가를.

연애할 준비가 안되었다면서 곧바로 남자친구를 사귄 것.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해놓고 급하니 기자가 된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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