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멍든 종이
"안녕하세요? 한류전문 잡지사 B의 G기자입니다. 저희는 대만어판, 일본어판으로 번역되어 현지에 배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귀사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고 싶은데 press 발급이 가능할까요?"
새로운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마지막 학기를 간신히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좀 더 늦어지더라도 재수강으로 학점을 관리해 깔끔하게 졸업하라고 설득했지만, 나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었다.
국문과는 내 길이 아닌 게 확실했다.
고전도, 문법도, 소설도, 시도 이제는 다 지긋지긋했다.
오죽하면 내 삶보다 훨씬 퇴색되어 있어 지루하기만 했다.
유명 소설가 출신 교수님의 소설 작법 수업은 왜 또 갑자기 신청했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이상한 소설 한 편을 제출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문학이 진절머리 났다.
작가가 되기 싫었다.
더 이상은, 산산이 부서진 삶과 인격을 재료 삼아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처럼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거꾸로 나의 조각난 부분을 모으고 삶을 정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능력도 없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도, 증오라고도 한다.
문학계가 나에게 무관심하다면, 나는 문학계를 증오했다.
일단 나의 존재도 모르는 문학계는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내 편에서는 문학계에 속았다고 생각했고, 질리고 질렸기에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연계전공으로 들었던 미술사 관련 수업이 훨씬 재미있었고, 성적도 그나마 좋게 나왔다. 특히 서양 미술사조에 따라 시대가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가.
르네상스, 고전주의, 로코코, 바로크,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등... 거기에 맞춰 수많은 화가, 수많은 그림을 만나게 되고 알게 되는 게 흥미로웠다.
직접 미술을 전공하지는 못했으니,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잘 사는 집 여식들이 ‘멋으로 하는 일’ 같았고, 유럽이나 미국 유학도 필수로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언강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사실 철학 수업이 제일 좋았다.
그 시절에는 포스트 모더니즘, 해체주의, 상대주의 등 탈중심주의 사조가 워낙 강했는데,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키에르 케고르, 야스퍼스 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더 좋아했다.
신이 창조한 세상 가운데, 각자가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신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고유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그들의 사상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의 기독교적 신앙과 철학적 사유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뱡향을 제시해 준 것이다. 결국 그때의 영향으로 멀고 먼 훗날이지만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고, 지금 자전적 소설, 에세이를 쓰는 이 자리에 간신히 머무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철학은 어쩌면 국문학보다 훨씬 좁디좁은 전망 속에 놓여 있었고, 결국 그 길도 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잠깐 또다시 독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자신을 믿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무난하게 일반 회사에 취업해서 다달이 월급을 받고 싶었다. 아빠는 교직 과목을 이수해서 부모님 따라 선생님이 되는 게 어떠냐고 권하셨지만, 절대로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F를 무더기로 받았던 1학년 1학기를 비롯해, 학사 경고를 받게 만든 여러 과목을 그대로 안은 채 졸업했다. 성적은 겨우 졸업 가능 수준에 그쳤다.
그걸 가지고 대기업에 직접 지원서를 내어 보니, 그제야 현실을 실감했고, 어리석고 섣부른 선택을 한 내 자신이 후회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국문과나 철학과 전공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전공불문의 영업직 같은 자리도 이런 성적의 지원자를 받아줄 리 없었다.
그나마 막판에 중국 어학연수라도 잠깐 다녀와서, 중국어활용능력 시험에서 중급을 받아놓은 게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스펙이라면 스펙이었다.
나는 서류 심사에서부터 수차례 낙방을 하며, 어쨌든 껍데기뿐만이라도 자랑스러운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의 업적을 다 말아먹고, 엄혹한 현실에 몸소 부딪혀가며 무책임한 행실과 허약한 내면의 실상을 철저히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간판만 달린, 작은 무명의 한류 잡지사에 영화 관련 취재기자로 지원하여 간신히 붙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