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유리(遊離)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두 살 터울로 세상에 나온 둘째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유치원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당시 마지못해 남긴 글들을 보면,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동물 울음소리 그 자체일 뿐.

하나님 이름만 부르고 있다.

원망은커녕 두려워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경정신과 약을 먹었다. 처음에는 우울증, 그다음에는 공황장애 때문에.

그 이후로 내 정신과 감정 상태는 많이 달라졌다.


병원에서도, 주변 사람들도 말렸지만 은행을 그만두게 되었다.

처음에 우호적으로 나를 도와주던 직원들도, 일할 의지가 없고 주의력이 떨어져 자꾸 실수만 반복하는 나를 점차 짐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떠날 때, 냉랭한 그 눈길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남은 첫째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온통 주력했다. 세상의 모든 위험과 사고로부터 지켜내는 것이었다.


모든 활동에는 위험 요소가 따랐고, 통제 불가능한 세상과 조우한 나는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외부 활동과 만남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조금의 즐거움도, 어떤 감정의 표현도 용납이 안 됐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또 검열했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며 염려했다. 지금 하는 말과 행동, 느끼는 감정까지 감히 아이를 잃은 엄마가 누려도 될 법한 것들인가.

‘무얼 잘했다고.’


죽지 못해 살아야 했다.

굳이 안 괴롭혀도 충분히 못 살겠는데, 더더욱 스스로를 옥죄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어미에 대한 형벌이자 스스로 내린 처단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대형 인명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특히 아이들이 희생되는 참사들이.

그 부모의 심정을 알기에 견디기 힘들었다.

그 자체도, 비극을 이용하는 정치도, 그냥 모든 게 상처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가장 괴롭고 무서웠다. 그중에서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이 라인 저 라인을 돌아다니며 고기, 야채, 과일, 세제 등을 담는 일이 제일 고역이었다.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사고가 벌어진 이곳에서의 기억이 담긴 자아만이라도 없애버리고, 아주 먼 땅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로 훌쩍 떠나 1년을 보냈다.

거기서 쭉 살고 싶었다.

힘들지만 견딜만했고, 새로운 환경과 언어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와 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유일한 사람. 남편, 아이 아빠는 나랑 완벽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별개의 인격체임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 전에도 심하게 싸울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실존적으로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슬픔을 해소하고 살아갈 힘을 얻어야 했다.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듯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감내해 줄 힘이 더 이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사람 역시 나처럼 견디기 힘들 것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는 앞으로 저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우리를 한국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응원하기로 하며 헤어졌다.


우리는 아이들로 인해 끈끈하게, 또 영원히 연결 되어 있다.

친구로 만났던 처음처럼, 아직도 스스럼없이 소통하면서 잘 지낸다.

아이 일로 가끔 함께 하면 여전히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 주는 그이고, 나도 그이에 대한 대우와 예의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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