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맺음말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처음 자전적 소설을 쓴 건 순전히 간지럼증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아토피가 찾아왔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공황장애를 극복한 후 새로이 찾아온, 극심한 고통이었다. 마치 하나님이 사탄을 통해 욥에게 허락한 고난의 연속인 것처럼, 이번엔 내 육체에 직접 닥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게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막 끝낸 순간부터였음을 깨달았다. 나의 영원한 난제, 미스터리.

코로나가 끝나고 부모님이 서울로 보러 오시겠다고 하셨다. 못 뵌 지 4년 만이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참척의 고통에 처해 있다고 해서, 나의 병든 원가족이 단번에 달라질 리가 없었다.


모든 일상이 멈추고 삶이 멎어버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님은 내 앞에서 더욱 맹렬하게 싸우고, 더 열심히 여행 다니고, 열정적으로 취미활동을 하셨다…

한결같이 나를 밀어냈다…


그들은 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 대신,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눈뜨게 해 주었다.

인간에게는 그 어떤 조그마한 기대조차도 갖지 말아야 함을 철저히 일깨웠다. 이혼이라는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부모님 덕분이었다.


언니도 나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오랜 기간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아에 대한 경계가 약한 언니는 종종 과한 동일시로, 세상과 내 모든 걸 아는 듯 넘겨짚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 안에 나쁜 의도가 있지 않음을, 오히려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다.


이혼 후 나는 소일을 하며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평생 그래왔지만 높은 연봉도 근사한 집이나 차도 내 삶에서 중요 순위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 편안함, 안락함이 최우선의 가치였을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곁을 오래 비울 수가 없어서 정규직을 구하는 것은 포기했다. 덕분에 대학 시절 방황하느라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르바이트를 뒤늦게나마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었다. 쿠팡에서부터, 동대문 상가 의류 포장, 스마트팜 농작물 재배 등 육체노동에서부터 번역, 검수, 데이터 라벨링, 데이터 수집 등 단순 사무일까지. 결국 은행에서의 서비스 경험을 살려 오전 시간대 스터디카페 매니저로 정착했다.


스스로 제약을 두고 거친 삶의 전선에 다시 한번 뛰어드니 생에 대한 오기가 다시 피어났다. 객관적으로 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나에게는 비로소 숨통이 열렸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이겨내고 다시 사람들 속에 섞여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가끔씩 앞날이 걱정되고는 했다. 특히 경제적 여건 때문에 불안할 때가 그렇다.

그렇지만 그 이유로 글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그저 하루 동안 세상에 어지럽힌 내 발자국과 행동거지들을 잠들기 전에 기도와 회개로 지우는 삶, 소박하고 조용하게, 그렇게 잊히는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부과도 다니고, 독한 약과 연고, 식이조절, 민간요법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억눌린 상처가 만드는 정신적 스트레스, 간지러움을 해소할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지막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고, 퇴고를 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글을 출판사 여러 곳에 서둘러 보냈다.

그리고 모두 거절을 당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위안이라면 이것이 엄마이자 가장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테라피였다는 것이다. 내 안의 묵은 독소를 뽑아내는 일이었고, 육체와 정신을 정화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이 글을 써가는 동시에 두 번째 자전적 소설 <도도한 인생>을 완성하여 투고까지 하고, 다시 거절을 당했다.

그리고 첫 번째 자전적 소설 <선인장>을 다시 고치는 작업 중에 있다. 아마추어 티가 나는 원래의 표지도 요즘 스타일에 맞춰 다시 손 봐두었다. 조만간 개정판으로 수정해서 다시 올릴 예정이다. 그러나 원본은 날 것이지만 여전히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글임이 분명하다.

또, 내가 정말 사랑하는 동화책 <어삼고>를 여러분께 소개한다.

세 번째 자전 소설 <먼지>는 이제부터 조금씩 써나갈 예정이다.


요즘은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지나친 독서와 노안으로 인해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그렇게 되기까지 다시 몇 년간 책에 파묻혀 하루에 10권을 번갈아 읽으면서 하루 평균 한 권씩 독파하기까지 탐독한 탓이다. 이런 상황까지 맞물리니, 앞으로는 내 글이라도 조금씩 풀어내가기도 하며 지내보려 한다.



이 마지막 장은, 독자들 입장에서 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글을 쓰지 못한 침묵과 소요의 상태로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글과의 개인적 인연‘을 풀어가는 이곳의 주제와 방향에 맞는 쓸거리가 사실상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띄엄띄엄이지만, 이야기를 솔직히 터놓고 펼쳐놓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으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담기지 못한 틈에 겪어온 삶의 여정은 지금까지 글에 담은 것보다 훨씬 더 격랑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허락하신다고 하셨고, 그 말 앞에 절규하며 억울해하며 가슴을 찢던 나는, 지금은 담담히 인내하며 지나오는 중이다.

다시 또 시간이 흐르면 그 이야기들도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나는

왜 쓰는가.

운명이었다.

난생처음 가족들이 내게 얼굴을 보여준 사건.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기대와 관심이었기에 그 정해진 룰에 따라 살기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이끌림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글을 쓰는데, 표현에만 관심 있다고 생각했다. 배출구 노릇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글을 써가면서 깨달았다.

나는 사실 소통하기 원했다.

부모님과,

언니와,

내 소중한 사람들과,

그리고 독자들과.


나는 자폐성이 강해 진실만을 단답형으로 말하곤 했다.

이런 대화 스타일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결국 마주 보고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차마 전할 수가 없다.

내 진짜 진심, 깊은 속사정은 글로만 전달이 가능하다. 어느 정도 각색의 힘과 글의 무딘 속성, 생략과 여운을 통해.


그래서 외국에 가면 그 나라 말을 배워 그 나라 말로 소통해야 하듯,

나는 쫓기듯 글의 나라로 이민 왔다. 그리고 이 나라 언어로 말을 한다.

굳이 현실에서 이 한국 땅을 벗어나 먼 곳으로 가지 않아도, 혹은 매일의 내 자취를 지우며 숨죽여 지내지 않아도, 글의 나라의 입국 통로를 지나는 순간 비로소 온전한 나를 느낀다.


이 나라에는 많은 거인들이 계시지만, 그 가운데 내 존경하는 두 선생님, 박경리, 박완서 님은 모두 나와 같은 아픔을 겪으셨던 분들이다.

내 갈 길을 밝혀준 작가, 그리고 어머니, 딸, 하나님의 종, 인간이었다.

감히 두 분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이 글 끝에 함께 담아 종이비행기를 접어 그곳을 향해 띄운다.





독자님들께 전하는 글


글의 첫 장을 여는 순간 제 마음에 굳게 닫혀 있던 자물쇠도 열립니다.

지금 처해있는 위치와 능력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제게 끌어당겨서 고이 묶어두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이 글을 한 번이라도, 혹은 끝까지 함께해 준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구독, 응원>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음에 이 글을 통해 백번 양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언젠가 소란하지 않게, 저만의 방식으로 여러분의 공간을 조용히 그러나 빠짐없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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