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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삶 24

딸은 핑계 엄마는 자존심

선생님 오늘은 학교에 남아서 일찍 가야 돼요
왜 너는 자주 남는 거니
선생님 오늘은 영어학원 보충이 있어서 일찍 가야 돼요
영어학원만 중요하니
선생님 오늘은 가족모임이 있어서 일찍 가야 돼요
그래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니
선생님 오늘 단원평가 빵점 맞았어요
한 게 없잖아
선생님 오늘은 머리가 아파서 일찍 가야 돼요
친구랑 웃고 떠드는 건 뭔데
책을 펴기까지 15분 물 마시고 전화하고 수다 떨고
공부는 언제 할 건지.

있는 것 자체가 민폐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매일매일이 이 핑계 저 핑계
하루도 그냥 정상적으로 수업을 한 적이 없는 딸.

우리 딸하고 이번주에 보충하기로 약속했어요
그 딸이 이번주는 배드민턴 수업 때문에 보충을 못한다는데요
무슨 소리예요 얘기 다 끝났는데 선생님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내 딸이 보충을 한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그 딸이 못한다고 했다고요 아니 내 딸이냐고요.

참 기가차고 코가 막힌다.

딸은 중간에서 살살 핑계 대면서 말 바꾸기
엄마는 대장군 같은 목소리로 윽박지르기

참 환상의 궁합이다.

딸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수업시간이 늘어나고 수업료가 오릅니다
아니, 과목이 똑같은데 왜 수업료가 똑같나요
딸한테만 적용하는 게 아니고요
아니 누가 그걸 모른대요. 공부방을 처음 보내서 그런 거잖아요
큰아들도 있잖아요
큰아들은 학원만 다녀서 공부방을 몰라요
그럼 학원은 초등하고 중등하고 수업료가 같았나요 묻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눌러 참는다.

웬만하면 얘는 그래도 엄마는 안 그랬는데
진짜 10년 만에 만나보는 쌍으로 내로남불 안하무인 단무지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항상 끝이 더럽다
시험결과가 안 좋으면 모든 탓은 선생님에게 돌린다
공부를 안 하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이 싫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여기서 잠시 멈춰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상황에서 이 사람들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웬만하면 사람을 사랑하고 살자는 게 내 마음인데 어럽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결핍도 트라우마도 방어기제도 다양하겠지 그건 알겠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진심은 통할 수 있을까.
진솔할 대화가 가능할까.
내가 고정관념으로 너무 앞서 가는 건 아닐까.

머리도 마음도 복잡하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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