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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다리 위에서

by 끼라

3호선 매봉역 4번 출구에서 골목 안쪽으로 10분 정도를 걸어 들어가면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넓고 튼튼한 나무다리가 나온다. 도곡동에서 개포동으로 곧장 이어지는 다리다. 양재천의 벚꽃이 풍성한 자태를 뽐내며 만개했을 때, 해가 길어지며 녹음이 짙어질 때, 그토록 푸르던 잎이 노을처럼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갈 때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나무다리 중간에 서서 계절이 바뀌는 양재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 가득 담는다. 산책로치고는 꽤 장관을 이루다 보니 나무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발걸음은 느려지고 입꼬리는 가볍게 솟는다.


몇 해 전 개포동에 있는 회사에 다녔을 때, 그 다리를 수백 번도 넘게 오가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밝고 희망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절망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한 번도 이별해 본 적 없는 것처럼. 그들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는 누구나 고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구나, 그 덕에 행복을 느끼는구나. 그러니까, 이 다리는 모두가 잠시나마 행복해지는 다리구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굳이 거기까지 찾아갔다.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지만, 이별에 다다른 관계를 억지로 붙든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나로서는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동 시간 따위는 얼마가 되었든 중요치 않았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에 비하면 긴 시간과의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청명한 가을 풍경 위에 놓인 나무다리는 여전했다.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사계절을 만끽하러 찾아오는지 다리 중간에 아예 포토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유아차를 끌고 바람 쐬러 나온 신혼부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편안한 운동복 차림의 고등학생들, 형형색색 등산복을 입은 채 포토존에서 사진 찍는 중년들. 몇 달을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더위로부터의 해방을 온몸으로 누리기 위해 삼삼오오 양재천 다리 위에 모였다.


저 멀리, 오색빛깔로 반짝이는 사람들 틈에서 산책로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눈물만 후두두 떨어뜨리는 흑백의 내가 보인다. 눈물이 수직 낙하한 자리에는 마치 곰팡이 같은 얼룩이 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에게만 장대비가 내린 듯하다.




그때의 나는 감정 조절이 아예 불가능한 수준으로, 폐차 직전의 고물차처럼 정신이 다 망가져 부서진 상태였다. 그와 싸운 일이나 그에게 들은 모욕적인 말들을 복기하다 보면 금세 감정 과잉 상태가 되어, 거의 토해내다시피 눈물을 쏟아야만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그도 내 눈물에 내성이 생긴 지 오래여서 내가 울든 말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를 내버려 두었다. 나무다리 위에서 그와 통화를 하던 순간이었다. 더 정확히는, 순식간에 거대해지는 눈덩이처럼 스스로 화를 부풀리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말도 안 되는 오해로 불같이 화를 내는 그를 애써 무시한 채,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쥐어 짜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결심하기 위해. 다시 말해, 그와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손과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그의 목소리가 잠잠해지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잠깐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온 나를 왜 그렇게 짓밟으려 했을까.


오래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네가 먼저 사과해.”


싸울 때마다 그러했듯 그는 내게 자존심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그는 내가 평소처럼 순순히 사과하리라 기대했겠지만, 그럴 생각이 없던 나는 곧바로 거절했다. 그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전부 처분하면서. 이 나무다리까지 굳이 찾아온 것처럼 나에게는 나 자신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간절하게, 전부 그만두고 싶었다. 그의 분노,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관계, 불안과 두려움, 깊어지는 우울, 비난, 욕설, 고함, 변질된 마음,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슬픔….


그날의 바람 냄새와 살갗을 스친 공기의 온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느껴진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은 비로소 우리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은 날이었으니까.


나무다리를 건넌다. 그와의 모든 것을 저편에 남겨 둔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의 영혼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외로움과 괴로움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다리 끝에 다다라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나에게서 분리된 시커멓고 거대한 음울함이 빈틈없이 나무다리를 짓누르고 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다리가 굉음을 내며 삽시간에 양재천 아래로 무너져 내린다. 그와 나를 허술하게 잇던 내 마음속 무언가처럼.




그날 저녁. 그가 집으로 찾아왔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웃으면서 장난을 치고, 아이처럼 붙잡고 떼를 쓰고, 손을 잡고,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약속을 해가며 갖은 애를 썼다. 그렇게나 나를 함부로 대하며 자존감을 박살 낸 사람임에도 막상 얼굴을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게 참으로 한심하고도 엿같았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상황 판단 하나 똑바로 못 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 되었는지. 한 시간 넘게 붙잡고 늘어지는 그를 내보내기 위해 부러 모진 말을 퍼부었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도 이해 안 되고, 네가 나 좆같이 보는 것도 지겨워. 지금 나 붙잡는 것도 내가 만만하고 호구 같아서 그러는 거 다 알아.”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우리 둘이 서로 아직 사랑하는데 어떻게 헤어져.”

“사랑? 아니, 너는 나 사랑 안 해. 싸울 때마다 해야 할 말, 하면 안 되는 말 구분도 못 하고 눈 뒤집혀서 난리 쳐놓고, 네 기분 다 풀리면 그제야 정신 차리고 사과하는 거 진절머리 나고 역겨워. 너랑 싸우며 기분 잡치고 불행하게 사느니 혼자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어. 이미 바닥까지 다 본 사이인데 이쯤에서 그만하자. 제발. 너, 절대 안 변해.”


한참을 벙찐 얼굴로 가만 앉아 있던 그는 곧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어서, 그렇게까지 상처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마지막이 이럴 수밖에 없어서, 미안한 마음에 밤새 헛구역질까지 해가며 울었다.


드디어 막이 내렸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순간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울 것 같은 표정,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는 수도 없이 봤을 그 얼굴. 그러니까, 정작 내가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로 수개월 동안 나는 사람들이 도대체 이별을 어떻게 견디는지 간절히 알고 싶었다. 어떻게 이 아픔을 알고도 또 사랑에 빠질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가슴에 물리적인 통증마저 느껴져 밤마다 타이레놀을 복용했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마음이 깊었던 만큼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를 추억하다가 증오하다가 후회하다가 그리워하다가 다시 화를 내다가 슬퍼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감당하는 일이 진절머리가 나서, 제발 그의 모든 걸 잊게 해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던 밤이 숱하다. 그의 모든 기억을 도려낼 수만 있다면, 몇 달만 시간을 앞당겨 하루빨리 이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떠한 형벌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주 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깊은 잠을 잤다. 친구들에게 제발 좀 쉬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못 견뎌서 몸이 세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고 계획으로 꽉 차 있던 나였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에너지를 얻는 나였다. 그랬던 내가 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날이 늘었다. 끼니를 거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 꼭 맞던 옷이 널널해졌다. 내 방 천장 벽지에 미세한 무늬가 있었음을, 사람이 극도로 우울해지면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습관처럼 자책도 했다. 이게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던 건지, 내가 예민했던 건 아닌지, 원래 다들 이렇게 연애하는데 나만 못 견디었던 건지, 어쩌면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는 않았을지, 내가 이 관계를 망친 게 아닐지. 스스로 내린 결정임에도 매일 똑같은 질문을 되뇌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나를 달래주기 위해 우리집 근처까지 찾아와 준 친구가 술잔을 들고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K 정말 사랑했던 거 맞아? 내가 보기엔 네가 K를 너무 사랑해서라기보다도 너의 책임감이나 고통을 네가 다 감내해야 한다는 어떠한 믿음 때문에 관계를 끌었던 것 같기도 해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어쩌면 사랑 아니었을 수도 있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새로운 발상과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의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들이자, 내 안을 부유하던 온갖 감정들이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점차 흐려지다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엔 아무런 표정도 아무런 감각도 없는 이성만이 떡하니 남아 순식간에 나를 과거로 데려다 놓았다. 거기엔 참아주는 나, 져주는 나, 이해해 보려 애쓰는 나, 수도 없이 눈감아주는 내가 있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수많은 과거의 나를 직시한다.


왜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왜 고통과 불편함을 감내하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을까. 생각해 보면 친구의 말대로 단지 그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좋은 여자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안정적인 연애를 위해 누군가는 물러서야 한다는 통념, 그게 나여야 한다는 책임감, 연애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여러 프레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 갇힌 줄도 모르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뻔한 사랑 서사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나는 나를 버렸다. 흐린 눈으로 진실을 외면했고, 사랑을 의무로 착각해 나 자신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어쩌면 내 사랑은 나의 정상성을 입증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K에게 실망하고 처참히 무너졌던 순간만큼 K에게 고마웠던 기억이나 행복했던 날들도 여럿 존재한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던 마음 역시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고민이 길었다. 상처만을 조명하는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우리가 나눈 행복을 모두 없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어떠한 진실로도 다른 진실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처는 추억으로 상쇄할 수 없는 법이다. 상처는 다정함보다 느리게 사라지고 더 오래 영혼을 뒤흔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를 위태롭게 했던 시간들에 대해 쓴다. 그게 나를 지키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믿으니까.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여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구조적인 경험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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