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학 첫날이다.
방학 전, 남학생 반에서 빈발했던 사소한 다툼과 학교폭력 사건들이 못내 마음 쓰였다. 아이들의 얼굴은 어떠한지, 교실 분위기는 좀 달라졌는지 궁금해 시간마다 복도를 지나며 교실 안을 살폈다.
내가 교장으로 재직 중인 이 중학교는 본래 남중으로 개교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십여 년 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혼성반이 아닌 ‘남녀분반’ 형태로 운영 방식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주로 근무했던 내게 공학 내 분반은 낯설지 않았으나, 최근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대학처럼 이동수업을 하는 고교 현장과 비교하면 중학교에서의 철저한 분리 운영은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졌다. 1학기 말, 담임교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남학생들 사이의 학교폭력과 수업 방해, 교권 침해 사안을 줄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교사들은 남학생반 맡기를 기피했고, 특히 층별로 남녀를 분리한 구조가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도 꾸준히 합반 건의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내년도 '남녀혼성반' 추진을 약속하며 우선 작은 실험을 제안했다. 2학기부터 남녀 학급을 나란히 배치하는 '교실 재배치'였다. 이성이 곁에 있으면 태도가 조금이라도 유연해지리라는 전략적 판단이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위치를 바꾸자 아이들은 "남학생 교실이 더럽다", "여학생이 더하다"며 쫑알거렸고,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교장 선생님, 내년에 합반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거칠게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그 적대감 속에서 오히려 확신을 얻었다. 서로를 향한 근거 없는 혐오의 불씨는 바로 이 '격리'와 '단절'에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추측하며 미워하기보다 가까이서 생활하며 서로 이해하고 예의를 갖추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다짐했다.
변화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기존 학년을 변경하는 것은 민원이 크다는 조언에 따라 신입생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려 했으나, 1학년 남학생 학급에서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으로 한 학생의 치아 6개가 손상되는 사건이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전 학년 혼성반 시행을 목표로 설문조사와 운영위원회 심의, 공청회를 강행했다. 학생들은 공청회 이후 찬성률이 올랐지만, 학부모들의 반대는 거셌다.
공청회에서 감기 기운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설득을 이어갔다. 결국 내년도 3학년은 제외하고 1·2학년만을 대상으로 혼성반을 운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으나, 1년간 공들인 변화의 씨앗이 싹을 틔운 순간이었다.
올해 새 학기, 복도를 순시하며 들여다본 교실의 공기는 전과 달랐다. 학기 초라 조심스러운 면도 있겠으나, 몰라보게 단정해진 수업 태도와 평온한 분위기를 보며 공청회에서 겪었던 수모와 고단함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래, 이거였구나." 힘들지만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앞에서 했던 약속을 하나씩 지켜나가려 한다. 탈의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은 체육복 등교를 허용하고, 쾌적한 공기를 위해서 덮개 있는 신발장을 새로 마련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은 '관계의 안전망'이다. 친구 사귀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반 편성 과정에서 신뢰 관계를 철저히 고려해 배정했다. 학생들이 친구가 없어 학교를 떠나는 일만큼은 막고 싶다는 나의 의지였다.
서로를 밀어내던 벽이 사라진 자리에 이해와 예절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혼성반이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아이들이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교장실의 문턱을 넘는 나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