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교감들의 멘토가 되어 던진 질문, 그리고 나의 고백
교육청으로부터 예비 교감들의 멘토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갓 자격 연수를 마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후배 교사들 앞에 서자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은 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셨나요?"
돌아온 대답은 다양하면서도 공통적이었다. 부모님의 뒤를 이은 '모태 관리자'형부터,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가 두려워 승진을 택했다는 현실적인 고백까지. 나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여자는 사범대가 최고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교사가 되었고, 수업의 보람을 숙명처럼 여기며 37년을 버텼다.
수업하는 기계로 살았던 날들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내게 관리자로의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특히 남교사 위주의 승진 문화 속에서 여교사가 중책을 맡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어 교사는 '수업하는 기계'였다.
새벽 0교시부터 방과 후 특강까지, 영어와 우리말을 저글링 하며 입에 거품을 물어야 했던 시절. 아이들을 키우며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해 원거리 학교를 찾아다닐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체력은 고갈되어 가고, 나이 든 영어 교사가 변함없이 아이들의 존경을 붙잡아두기란 어렵겠다는 판단이 나를 승진의 길로 등 떠밀었다.
3D 업종, 그 외롭고 불편한 자리
이제 곧 교무실 중앙, 그 외롭고도 불편한 교감 자리를 물려받아 오래 버텨야 할 후배들을 보니 측은지심이 든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만 기피하게 되는 이 3D 업종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교감의 덕목은 명확하다. 매사에 합리적이어야 하며, 얽힌 실타래 같은 학교 일을 조심조심 풀어내는 교통정리사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단호하게 절차를 요구할 줄 아는 강단도 필요하다. 학교 사회는 무서울 정도로 좁아서, 교사는 물론 관리자의 이름 뒤엔 늘 긴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선생보다 발 빠른 소문이 먼저 온다."
내가 이 학교에 교감으로 부임했을 때, 나에 대한 소문은 무엇이었을까. 수업에 목숨 걸었고 공무원으로서 과오 없이 살았으니, '중간은 가는 관리자'라는 평이었기를 자평해 볼 뿐이다.
환갑의 나이에 다시 묻는 '교육 철학'
내년이면 교감 역할을 마무리하고 교장 발령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기쁨보다 두려움에 사지가 부르르 떨린다. 학교장은 학교 분위기의 절반 이상을 결정하는 존재다. 교장의 철학 하나에 학교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교사들은 부임하기도 전부터 새 교장의 프로필을 공유하며 운명을 점친다.
부끄럽게도 교직에서 37년을 보냈지만, 누군가 "당신의 교육 철학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환갑의 나이까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다면, 적어도 '똑바로'는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