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나이에 나라 녹을 먹는다는 것

예비 교감들의 멘토가 되어 던진 질문, 그리고 나의 고백

by 해림

교육청으로부터 예비 교감들의 멘토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갓 교감자격 연수를 마치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후배들 앞에 서자, 문득 이 질문이 입가에 맴돌았다.


“선생님들은 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셨나요?”


돌아온 대답은 다양하면서도 닮아 있었다. 부모님의 뒤를 이은 ‘모태 관리자’형부터,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과 세대 차이가 두려워 승진을 택했다는 현실적인 고백까지. 나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여자는 사범대가 최고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교사가 되었고, 오직 수업의 보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지금까지 버텼다.

과거 고등학교에서 여교사가 관리자로 승진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남교사 위주의 승진 문화 속에서 여교사가 승진에 유리한 보직을 맡거나 높은 근평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어 교사였던 내게 학교는 '수업하는 공장'과 같았다. 0교시 수업부터 방과 후 보충수업, 밤늦은 야간 특강까지 영어와 우리말을 저글링하며 입에 거품을 물어야 했던 시절, 승진은 그저 '편한 남들'의 이야기로만 치부했었다.


승진에 필요한 지역 점수를 따기 위해 왕복 2시간 거리의 외곽지 학교에서 4년을 버티는 일도, 아이를 키우던 내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공부 욕심에 취득했던 박사 학위가 연구 점수를 채워주었고, 베이비부머 세대 관리자들이 대거 퇴진하며 생긴 빈자리 덕에 뒤늦게나마 교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고갈되어 가는 체력이었다. 교실에서만큼은 넘쳤던 자부심은 기력이 쇠함에 따라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쏟아내는 내 수업이 아이들의 존경을 끝까지 붙잡아둘 수 있을까 하는 냉정한 판단이 나를 승진의 길로 등 떠밀었다.


이제 나는 교무실 중앙, 그 외롭고도 불편한 자리를 물려받을 후배들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낀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모두가 꺼리는 ‘3D업종’인 교감 자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학교장이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면, 교감은 그 방향을 현실로 일궈내는 실무 책임자다.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의 갈등을 걸러내는 완충지대이며,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원칙을 조율해야 하는 자리다.


“선생보다 발 빠른 소문이 먼저 온다.”는 말처럼, 관리자의 이름 뒤에는 늘 무거운 평판의 꼬리표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내가 이 학교에 부임했을 때, 나에 대한 소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평생 수업에 목숨 걸었고, 영어를 포기하려는 아이들을 단어 한 개라도 더 외우게 하려고 붙잡고 지내온 세월이었다. 특별한 과오 없이 살았고, 동료들로부터 ‘밥맛’이라는 원성은 사지 않았으니, 그저 ‘기본은 하는 교사’였기를 자평해 볼 뿐이다.


내년이면 교감 역할을 마무리하고 교장으로 발령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쁨보다 두려움에 사지가 떨린다. 과연 내가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겪어온 학교장은 학교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교장의 철학은 학교를 감싸는 공기처럼 구성원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지배한다. 교사들이 새 교장의 프로필을 공유하며 학교의 운명을 점치는 이유도 그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교직에서 37년을 보냈지만, 누군가 “당신의 교육 철학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선뜻 답할 거창한 문구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익히고 배운 대로 공평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꽉 막힌 관리자가 아닌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고자 할 뿐이다. 교장 발령을 앞두고 이제는 더욱 정신차려야 할 때다. 환갑의 나이까지 국가의 녹을 먹고 있다면, 적어도 ‘똑바로’는 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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