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임신 기간' 마지막 진료일.
아기집에 아기나 난황으로 보일 만한 것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 임신을 종결했다. 약 한 주 뒤 소파술을 예약하고 나왔다. 태연하고 의연하게, 산부인과 회전문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바깥공기를 쐬자마자,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니면 하루이틀 뒤, 어느 시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덤덤하던 마음이 한순간 찌릿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편으론 안도했다.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아도 되어서, 몸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어서, 만들어지는 생명이 염려되어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아서. 만들어진 생명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을 다시 지울 수 있어서.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임신이 끝나서 좋았다. 붕대를 풀고 자유로운 다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심리적 불안과 신체적 불편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
이제 내 뱃속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무한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임신 기간에는 입덧으로 울렁거리거나 조금이라도 허기가 지면, 착상 후 세포분열에 양분이 부족할까 봐 노파심에 즉시 무언가를 먹었다. 이제는 늦저녁부터 아침까지의 배고픔을 어느 정도 즐기던, 원래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다.
12주까진 절대안정이라며 운동도 삼가라던 말에서도 벗어난다. 이제 다시 땀 뻘뻘 흘리며 온몸으로 바닥을 구르며 춤도 추고 요가도 하고 근력운동도 할 수 있다. 역대급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다시 가벼운 상태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기쁜 마음과 별개로 자주 울었다. 옴마아아아 하고 서러운 울음이 자주 터져 나왔다. 두 달 동안 수영도 요가도 무용도 삼갔고, 흥미가 있었던 사내 연수도 연수 포기서를 제출했다. 휴가 기간에 집에서 울적하게 보낸 결과가 결국 유산이라는 게 억울했다.
기뻐하고 안도하거나 서러워서 우는 '나'가 있는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있었다. 나는 내 몸이 편해져서 좋고, 걱정거리 사라져서 좋고, 내 시간 빼앗긴 게 억울하구나. 철저히 나 중심적인 사고 아닌가? 이런 나라면, 양육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품었다가 온갖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뱉어내서 해로운 엄마와 아내가 되면 어쩌나 겁났다.
소파술 경험 기록을 찾다 보니 '00아 안녕,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같은 모성애 가득한 이별글들이 많았다. 물론 나는 난황도 아기도 아예 생기지 않은 채, 빈 아기집만 잠시 품었을 뿐이다. 심장소리까지 듣고 나서는 나도 마음이 미어지고 이별의 글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상황도 다르고, 임신확인서를 받고부터 모성애가 충만해지는 것도 아니라지만, 걱정 많은 나는 엄마로서의 내가 염려되었다.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 봐.
직접 겪어보기 전엔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 무엇을 느낄지 절대 알 수 없다. 결혼생활도 잘할 수 있을까 걱정 많았지만 큰 탈 없이 잘 지내온 것처럼 출산, 육아도 걱정 속에서 하나씩 부딪히고 깨지고 다듬어져 가며 없던 모성애도 나만의 모양으로 생겨나겠지.
나는 생각보다 무심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임신 초기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과 3kg 늘어난 체중만으로도 툴툴거리며 지냈다. 임신 10개월 전체를 경험하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불평을 쏟아낼지 모른다. 최소 십여 년을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자녀의 존재에 귀찮아서 도망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천만다행히도 내 툴툴거림을 대체로 받아주고, 때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이 곁에 늘 있었다. 어릴 때는 부모였다가, 조금 커서는 언니였다가, 결혼 후에는 남편이 있다. 의지로 거스를 수 없는 내 본성을 존중해 가면서, 툴툴거리면서도 꽤나 기뻐하고 행복해할, 넘치는 감정의 기복으로 울고 웃을 나를 조금 믿어보자.
몸이 회복되면 또다시 아기 가질 생각이 들지, 그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지, 차분히 지켜보자. 없는 모성애를 쥐어짜내지 말고 그냥, 나대로 있어본다. 일단 두 달간의 임산부라이프는, 이렇게 일단락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