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내 몸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10대 때는 몸을 보면서 갖가지 우쭐함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느꼈다. 55-85-S 사이즈 교복을 입는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발목이 두꺼워 발목 위로 오는 양말이 안 어울린다는 짜증을 내내 갖고 살았다.
20대 때는 내 몸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가면서, 사람들이 내 몸에 대해 칭찬하는 점을 극대화하는 즐거움이 컸다. 어쩜 그렇게 허리가 얇냐, 어깨선이 예쁘다는 말이 가장 많았으므로, 주로 허리선을 강조하고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자주 입었다.
서른 넘어서부터는 남이 내 몸을 보는 시선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몸을 드러내는 것부터 거북해지고, 여자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수로, 모양으로 평가받는다는 데 화가 났다. 그러다 현대무용을 시작하면서, ‘기능하는 몸’을 발견했다. 형태를 만드는 몸이 아니라 기능하는 몸. 그러면서 후들후들하고 피부에 편안한 옷을 입으며 몸을 구태여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몸매를 보정한다는 브래지어는 진작 다 버리고 압박 없는 속옷만 골라 입는다.
그리고 서른다섯. 이제 내 몸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고 착상하는 공간이 됐다. 생명을 품는 몸. 화장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내 몸이 낯설다. 허리 양옆은 늘 오목한 곡선이 있었고 배 앞은 늘 납작했다. 그런 내 몸이 서른다섯 해만에 새로운 변화를 겪는다. 배와 허리 좌우앞뒤로 두툼해지고 볼록해진다. 가슴도 크지 않아 속옷을 안 해도 괜찮았는데, 왠지 더 부어서 무게가 느껴진다. 20대 때였으면 가슴이 커져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몸매가 됐다고 기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담백하고 가벼운 내 몸에 혹처럼 살이며 붓기며 붙는 것이 썩 달갑지가 않다.
별 수 있나. 내가 생명을 품기로 결정했고, 그게 영락없이 내 안에서 빚어져야 하는 것을. 왜 있는지 모른 채 살았던 자궁이란 곳에서 아기집이 2cm나 되는 길이로 생겼다고 했다.
내 몸 안에 작디작은 아기집이 생겼다니.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집에서 나의 아기가 만들어지고, 세포분열을 하고, 눈코입귀며 손발이 생겨나 나올 거라니. 엄마들의 남다른 자식사랑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조금은 알겠다.
내 몸이지만 나만을 위해 살 때보다 더 조심하고 더 잘 돌보는 중이다. 내가 배고플 세라 끼니가 지나기 전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피곤하지 않게 여유 있게 잠자리에 들고, 무리되지 않게 일정을 조정한다. 몸의 모양으로만 치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몸의 기능으로 볼 때 지금 내 몸은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엄청난 기능을 수행하는 중이므로, 울룩불룩한 모양이 다소 아쉽더라도 몸을 잘 돌보고 아끼는 게 최선이다.
이걸 여자만 겪어야 한다는 (심지어 체구도 체력도 더 작고 낮은) 억울함이 있지만, 남편과 나는 한 팀이니 이게 내 역할이라 생각하며 충실할 수밖에. 내 몸이 낡아간다는 괜한 우울에 빠질 때면, 나머지 팀원에게 괜히 투정을 부리며 그의 존재에 감사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12kg 정도 늘어난다는데, 65kg이 된 몸을 경험하는 것도 참 신선한 일이겠다 생각하며 여정을 즐겨볼 참이다.